[경제시평-안동현]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

입력 2013-04-23 19:03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최근 발표한 ‘아시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2.8%다. 지난해 10월 예측치에 비해 무려 0.6%포인트가 감소한 수치다. 이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의 국민총생산 상위 12개국 중 뒤에서 두 번째다. 우리보다 성장률 전망치가 낮은 국가는 개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두 배가 넘는 싱가포르가 유일하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후 주요국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일 때만 하더라도 우리 경제의 저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성장률 추이를 보면 단순히 단기 악재에서 원인을 찾기에는 뭔가 구조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컨설팅업체 매킨지의 보고서가 이러한 우려를 적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우리 경제가 전형적인 중진국의 덫에 걸렸으며 성장이냐 정체냐 갈림길에 서 있음을 강조했다. 중산층 붕괴를 막지 못하고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할 경우 추락할 것임을 경고하면서 우리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물속의 개구리’로 표현했다. 사실 이 보고서에 새로운 내용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국내외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들이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앞서의 표현, 즉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다. 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위기의식의 부재를 질타한 것으로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련을 남겼지만 가장 큰 폐해는 우리 경제의 활력을 약화시키고 성장잠재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했다는 점이다. 가계 부문은 중산층 붕괴에 따른 양극화가 시작되었고 산업 부문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심지어 대기업 간에도 양극화가 잉태되었고 기업들의 위험 추구가 현저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가계의 양극화는 유효수요 부족으로 내수 부진을 낳는다. 산업의 양극화는 승자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진일보하는 동력이 되었지만 중견 기업들의 부진으로 전체적인 경쟁 구도는 약화되었다. 또한 재벌들의 무리한 차입 경영을 통한 투자가 외환위기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후 기업들이 위험 회피형 관리체제로 전환했다.

기업들의 소극적 투자, 고임금과 강성노조를 의식한 생산의 해외이전, 공정 자동화 및 아웃소싱으로 고용 창출이 둔화되면서 가계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가계의 양극화는 내수 부진을 불러왔고 서브프라임 사태 후 글로벌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수출마저 부진하자 우리 경제의 쌍발 엔진이 모두 멈춰 선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 처방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의 취약점은 수출과 내수의 연결이 원활치 않다는 점이다. 이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로 생산을 이전한 대기업들로 하여금 국내로 유턴해 고용을 창출하고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의료 금융 법률 유통 등 서비스 산업의 규제를 풀어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 부분의 서비스 산업은 저소득층이 아닌 고학력, 고소득층의 고용 기회를 늘려 양극화 해소에는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부품, 소재를 비롯한 전통적 제조업이 저소득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중산층 복구에 도움을 준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책이 있다. 하나는 일본의 아베 신조식 강력한 부양책으로 관주도형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다. 아베는 강력한 엔저 및 양적완화를 통해 국민에게 ‘할 수 있다’란 의식을 고취시키고 패배의식을 없애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른 방법은 정부 기업 및 노조가 마주 앉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스웨덴의 살츠요바덴식 빅딜을 통해 투자와 고용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방법이다.

관주도형 방법은 현재 우리 사회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 면이 있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참여해 대타협을 이루는 방법이 현 우리 정서에 보다 부합한다. 어떤 방법이든 우리 경제가 위기를 느끼고 물속에 잠든 개구리가 아니라 제2의 도약을 하는 개구리가 되길 바란다.

안동현(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