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갯녹음

입력 2013-04-23 19:02

어감과 뜻이 전혀 다른 단어가 있다. 대표적인 게 갯녹음이다. 언뜻 들으면 ‘녹음이 우거진 바닷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바다의 사막화 또는 백화현상으로 불리는 환경재앙이다. 바닷속 해조 군락이 사라지고 바닥에 하얀 석회질이 쌓여 생명체가 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갯녹음은 세계적으로 골칫거리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전역에서 발생했고, 동부 메인주에서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 이르는 2000㎞ 해안에서도 진행 중이다. 일본도 전국 바다에서 나타난 갯녹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아열대 바닷속에서는 산호초가 하얗게 죽어가는 형태로 나타난다. 세계 최대 산호 군락인 호주 북동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면적은 이미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인도양에 있는 스리랑카와 몰디브의 산호초는 90% 가까이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중반에 제주도 남쪽에서 갯녹음이 처음 발견됐다.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남해를 거쳐 동해와 서해 바닷속까지 하얗게 죽어가면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따뜻한 바다에서 잘 자라는 산호말 등 홍조류가 갑자기 번성했기 때문이다. 석회질을 함유한 홍조류는 미역과 다시마를 쫓아내고 군락을 이루다 죽으면 석회 성분을 남긴다. 2004년 실태조사에서는 갯녹음 피해 면적이 7400㏊였으나 2010년 다시 조사한 결과 1만4000㏊로 늘었다. 심지어 독도 주변 바다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바닷속에 숲을 가꾸는 ‘해중림(海中林)’ 조성운동이 한창이다. 다시마의 친척인 감태를 비롯해 미역, 곰피 등의 종자를 담은 가로 2m, 세로 2m 정도의 박스를 잠수부들이 해저에 볼트로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하얗게 변한 바닷속 바위를 강한 수압으로 청소한 뒤 감태를 부착하는 신기술도 등장했다. 지난 19일 해양수산부는 2017년까지 해중림 5500㏊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다음달 10일은 ‘바다 식목일’이다. 지난해 2월 공포된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올해부터 국가기념일이 됐다. 일반인이 바닷속에 들어가 미역과 다시마를 직접 심을 수는 없겠지만 죽어가는 바다를 다시 한번 생각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쟁과 남벌로 황폐화된 숲을 되살린 경험이 있다. 많은 나라의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해 민둥산을 푸르게 만든 방법을 배워간다. 이제는 바닷속을 되살리는 데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