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o Choo∼ 철도가 꿈틀거린다, 미국이 살아난다

입력 2013-04-23 18:33


영하의 날씨 속에 미국 중부 노스다코타주의 에핑. 광대하게 펼쳐진 지평선 위에 기다랗게 뻗은 검은 벨트가 살포시 놓여 있었다. 검은 벨트가 꿈틀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또 다른 검은 벨트가 그 뒤를 이었다. 검은 벨트는 바로 원유를 가득 실은 화물열차였다. 화물열차는 태평양 연안 워싱턴주 퓨젯만에 있는 정유시설로 향하고 있었다.

자동차 없이 살 수 없다는 미국에서 최근 철도 붐이 일고 있다. 화물 수송에 있어 트럭을 이용하던 미국이 유가 상승 등의 부담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미국 경제 회복의 핵심은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내는 것보다 철도산업의 부흥에 달렸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이런 현상이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셰일(혈암)석유 개발과도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가 아닌 철도의 나라 미국?

사실 철도는 1970년대만 해도 미국 화물 수송의 핵심이었다. 미국철도협회(AAR)에 따르면 철도는 1갤런(3.78ℓ)의 기름으로 1t의 화물을 800㎞ 수송할 수 있다. 이는 트럭보다 3∼4배가량 연료효율성이 높은 것이다. 운송비용은 트럭에 비해 거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화물 수송은 철도이용 비율이 높았다.

문제는 철도가 믿을 만한 운송수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트럭과 비행기는 정시에 화물을 수송했다. 하지만 철도는 별명이 ‘블랙홀’일 만큼 정시 수송이 힘들었다. 실제로 요시 셰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8년 전 새 자동차를 주문해 오하이오주에서 보스턴까지 운송하는 데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쟁력을 갖는다는 게 불가능했다. 상당수의 철도회사는 파산 직전으로 몰렸고 일부는 정부에서 인수를 검토하기까지 했다. 극한상황에 몰리다 보니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경쟁을 벌였다. 노사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쥐어짰다. 그러자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도 2010년 한물간 산업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철도회사 BNSF에 투자를 결정해 화제를 낳았다.

정시 도착률도 매우 높아졌다. 업계 1위인 유니언퍼시픽의 최대 고객인 UPS는 “철도는 열차 한 량만 고장 나도 전부 연착되는 구조”라며 “하지만 최근에는 효율이 높아져 정시 도착률이 99.5%에 이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철도수송화물도 다양해졌다. 전자레인지부터 테니스신발,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물품도 모두 철도를 이용한다. 심지어 비행기를 이용한 특급수송으로 이름난 페덱스(Fedex)나 UPS조차도 사실 철도를 통한 화물 수송이 더 많다.

철도 화물수송이 늘면서 투자도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다. 올해에만 140억 달러(약 15조8200억원)가 투입돼 새로운 노선과 재보급역 건설 등에 사용된다. 이런 투자를 바탕으로 속도향상과 노선운영의 효율성도 더욱 높아졌다. 즉 기존에 있던 레일을 복선화해 화물운송량을 늘린다든지 화물열차의 운송능력을 향상시켜 경쟁력을 회복했다.

유니언퍼시픽은 뉴멕시코주 산타테레사 화물터미널 건설에 36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아이오와주 클린턴에도 새로운 교량건설을 위해 4∼5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이곳은 미시시피강을 건너는 요충 지역으로 노후된 교량으로 다리를 건너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리던 악명 높던 곳이다.

BNSF는 41억 달러를 투자해 기관차와 화물차량 개보수, 화물터미널 건설, 원유수송 장비 도입 등을 계획하고 있다. BNSF의 투자는 주로 중부 노스다코타와 몬태나주에 집중돼 있다. 셰피 교수는 “철도 없이 많은 수입품을 운송할 수 없고 기름도 운반할 수 없다”면서 철도 수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셰일유 개발붐이 철도를 살렸다

철도가 각광을 받게 된 데는 최근 북미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에너지개발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경쟁상대인 트럭이 고유가와 운전사 부족, 과적 등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 것도 도움이 됐다.

컨테이너회사인 컨테이너스토어사의 톰 산갈리 사장은 평소 트럭에 많이 의존했다. 하지만 종종 일정을 놓치거나 잦은 고장으로 배달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2년 전부터 시험 삼아 철도를 이용했는데 성과가 매우 좋았다. 철도를 이용한 뒤 운송비가 평균 20% 감소했다. 심지어 운송비가 40% 절약된 경우도 있었다. 산갈리 사장은 “BNSF에 물건을 맡기면 3일 만에 제대로 배송된다”며 “비용도 줄일 수 있어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여객운송 증가도 철도 부흥의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120억 달러를 승객부문 철도에 투자했다. 이 돈은 32개주 152개 프로젝트에 투입돼 주로 통근열차와 같이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열차 이용을 확대하는 쪽에 사용된다. 매튜 로스 BNSF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 개발 같은 것이 철도산업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며 “이런 기회를 누구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노스다코타와 몬태나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셰일유 개발지역은 BNSF가 보유한 노선과 상당부분 일치했다. BNSF 운영노선은 노스다코타에서 석유가 생산되는 19개 카운티 중 16개 카운티를 통과한다. 몬태나의 경우도 6개 카운티 중 5개 지역이 통과한다. 이 노선은 주로 석유가 아닌 목재를 실어 나르던 곳이었다.

특히 최근 발견된 셰일유가 기존 지하에 설치된 송유관으로는 수송이 곤란한 지역에 있던 점도 철도산업 부흥의 원인이 됐다. 고정된 지역에 연결된 파이프라인과 달리 철도는 여러 곳으로 수송할 수 있어 파이프라인 설치에 드는 비용보다 단가가 높지만 수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로스 최고경영자는 “현재 52만5000배럴 수준인 하루 평균 원유 수송량이 연말에는 70만 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수송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100만 배럴은 미국이 매일 송유관을 통해 들여오는 전체 원유 수입량의 40%에 달하는 분량이다.

셰일유 개발에 따라 철도업체, 철도차량 제조업체, 원유 하역에 사용되는 터미널 운영업체는 호황을 맞고 있다. AAR에 따르면 2008년 미국 내 원유 운반 철도차량 수는 약 9500대였으나 2011년에는 6만6000대, 2012년에는 20만대에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수송의 또 다른 장점은 송유관을 새로 구축할 때처럼 환경보호단체나 정부 허가 관련 문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미 중부에 있는 원유 생산지역과 동부 및 서부해안 지역의 정유시설을 연결하는 송유관 구축은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지역의 반대 여론으로 신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너지조사기관인 필커링 홀트의 브래드 올슨은 “비싼 수입원유를 대체할 수 있도록 송유관이 구축되지 않는 한 철도를 통한 수송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월스리트저널은 지평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기차행렬은 마치 새로운 송유관과 같다고 묘사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