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한·일 해협’… 야스쿠니 집단 참배에 관계 급랭

입력 2013-04-23 18:21 수정 2013-04-24 00:17

지난달부터 일본 교과서 검정 및 외교청서 발표, 일본 고위 각료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이 이어지면서 한·일 관계가 격랑을 만났다. 특히 우리 정부의 거듭된 자제 촉구에도 불구하고 기록적인 숫자의 일본 정치인들이 23일 신사 참배를 강행해 두 나라는 한층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게 됐다.

과거 노무현정부나 이명박정부에서도 한·일 관계는 독도 및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갔지만 지금처럼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악재에 계속 노출되면서 향후 5년간 대일관계 정립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욱이 강경보수로 알려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과거 무라야마(村山) 담화 수정 움직임까지 거론한 상태여서 양국 관계는 더욱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전후 50주년인 1995년에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는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전후 70주년을 맞는 2015년 수정 담화를 밝힌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특히 7월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베 정권으로선 우경화 고삐를 갑자기 늦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당초 한·미 정상회담 이후 추진될 예정이던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기 힘들어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정상회담을 해봐야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새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먼저 제의했다. 하지만 일본 고위 각료와 정치인들의 잇단 신사 참배는 어렵게 꺼낸 대화 제의마저 일본이 스스로 거부하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특히 독도 및 과거사 문제가 한·일 두 나라의 국내 정치 이슈로 부각되면서 양국 간 안보 및 경제, 민간교류 분리대응 기조까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양국 간 미래지향적 논의를 해야 할 시기에 일본 정치인들이 시대역행적인 논의만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 경제협력 등 다른 분야 교류에서 정상적인 협력은 하겠지만 독도 및 과거사 문제에서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한·일 경제인회의 참석차 방한한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장 등 일본 기업인 8명을 만나 “한국과 일본 관계는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특수한 역사성이 있다”며 “양국 정치 지도자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신뢰를 쌓아 안정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