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강준구] ‘관치금융’의 성공 조건?

입력 2013-04-23 18:04

우리금융그룹이 길을 잃고 있다. 금융 당국의 압박으로 인한 이팔성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의 탓이다. 일부 계열사는 임기가 이미 끝난 사장이 비상경영을 하고 있고 일부는 사장이 아예 장기 공석 중이다. 23일 열린 정기 이사회에서도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에 실패했다. 이 회장이 사의를 밝힌 이후 불과 10일 만에 회추위를 꾸리려다 보니 외부 전문가 섭외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우리금융 차기 회장에 정부와의 교감을 통해 민영화를 성공시킬 수 있는 ‘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지난 정부에서 세 차례나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한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다. 매물인 우리금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금융 당국에서 책임지고 나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 사태에 책임진 사람은 오히려 임기를 1년 남긴 이 회장뿐이다.

이 회장의 등을 떠밀었던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소신은 ‘관치(官治) 금융’ 강화로 보인다. 그는 금융지주 계열사 사장을 같은 지주 소속 은행 출신이 독식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비은행 계열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는 그의 말에 동감하지만 진의는 의심스럽다. 외부 ‘낙하산’을 계열사까지 확대하려 한다는 불신 때문이다.

유럽의 ‘관치 금융’은 민간 금융회사의 지역사회화를 통한 지역경제와의 상생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관치’가 계속되는 우리의 경우 유럽처럼 풀뿌리 금융기관이 자생하기는커녕 오히려 저축은행 업계가 몰락해버렸다. 부실 저축은행의 감사들은 어김없이 대부분 금융 당국 출신이었다.

궁금하다. 출범 13년째인 국내 금융지주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현장인력의 무능 탓일까. 5년마다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이 힘이 없어서였을까. 신 위원장은 관치 금융 강화 논란에 대해 “원론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관치 금융의 성공 조건도 간단하다. 원론적으로 관(官)이 유능하면 된다.

강준구 경제부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