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국가가 빚 갚아준다는 건 오해, 능력껏 갚게 하자는 것”

입력 2013-04-23 17:57 수정 2013-04-23 19:44


개인부채 조정정책 총괄 박병원 국민행복기금 이사장

지난달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이 내달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채무 구조조정 신청을 위한 본 접수를 시작한다. 하지만 개인 부채를 일괄적으로 조정해주는 정책을 놓고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 정책을 총괄하는 박병원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을 만나 개인 채무조정 문제, 박근혜 정부의 경제현안과 해법 등을 들었다. 다양한 직책을 맡아 동분서주하는 그를 지난 18일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실에서 인터뷰했고, 필요한 부분은 추후에 전화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금융과 문화계에서 여러 직책을 맡고 있다. 무척 바쁘고 때로는 업무 부담이 클 텐데.

“은행연합회장,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이사장, 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조직위원장에 이어 국민행복기금 이사장까지 맡았다. 은행연합회장을 빼고는 모두 비상근 무보수로 일한다. 직책이 늘어날 때마다 그저 한 달에 며칠 봉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일이 많아졌다. 이제 일을 그만 늘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국민행복기금과 ‘신용회복지원협약’을 맺은 금융회사가 얼마나 되나.

“22일 현재 금융회사 4125곳이 가입했다. 전체 금융기관의 99%에 달한다. 거의 다 가입했다고 보면 된다.”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도 혜택을 받을 수 있나.

“국민행복기금의 협약에 가입한 금융회사에 대한 채무만 조정이 가능하다. 등록된 대부업체에 대해서는 계속 협약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국민 중에는 국가가 개인 채무를 갚아 주면 문제가 크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개인 부채를 국가가 갚아 주는 것이 아니다. 능력껏 빚을 갚으려는 의지가 있는 채무자들에 한해 금융회사들이 공동으로 채무조정을 해주는 것이다. 일부 언론이 채무조정을 부채 탕감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금융회사들이 국민행복기금과 협의해서 대출금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 세금이 들어가지 않는다. 조정해주고 남은 연체자의 대출 채권을 국민행복기금이 추심을 통해 받아내고 금융회사별로 대출금 비율에 따라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2월 말 현재 1억원 이하 채무를 6개월 이상 연체한 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연체자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는 건 사실 아닌가. 성실하게 빚을 갚은 대출자의 상대적 박탈감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고의적 연체자는 자신이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신용회복위원회 법원 등을 통해 개인회생 문제를 처리한다. 여러 기관에서 지금까지 하고 있던 일을 국민행복기금이 일정한 기간을 정해 일제 정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채무조정이 선진국에서도 통용되는가.

“금융회사들이 돈을 빌려주었다가 채무자가 갚을 능력이 없게 되면 전부 또는 일부를 조정해 준다. 그런데 채무자가 여러 곳에 빚을 지고 있으면 채무조정이 어렵다. 그래서 모든 금융회사를 협약에 가입시켜 국민행복기금에서 일괄 조정해 주는 것이다. 최대 50%(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일부는 70%)까지 조정해 준다는 것은 최소한 50%는 갚으라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50%나 조정해 준다고 비판하고, 다른 이들은 50%밖에 조정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50%가 적정선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최대한 빚을 갚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은 금융회사에게는 물론 국민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추가로 채무조정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개별적인 채무조정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정 기간 이상 연체된 채무에 대해서 일괄 채무조정을 해주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할 것이다.”

-개인 채무를 조정해 주는 일에는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는데 대책을 제시한다면.

“개인 소득을 높이고 부채상환 능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고용창출, 서비스산업 확대, 문화융성, 창조경제 실현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안이 실행돼야 한다.”

-총론보다는 각론으로 들어가서 설명해 달라.

“정부 과제는 성장과 고용, 국제수지와 외환보유고 관리, 물가안정 등 여러 가지이지만 어떤 시점에서 어디에 역점을 둘지가 중요하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부문에 정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청장년층의 고용창출에 올인해야 한다. 최근 5년간 고용이 124만8000명 늘었는데, 30대 이하는 64만명 가까이 줄었다. 50대 고용이 126만명 급증했지만 절반 정도가 여성의 사회복지 분야 파트타임 일자리로 보면 된다. 30대 이하의 취업률이 매우 좋지 않고 50대 일자리는 질적으로 열악하다. 젊은이들의 취업난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최근 고용 증가의 실상을 국민에게 자세히 알리고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생기는 일이라면 웬만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이 경제의 기본원리다.”

-무분별하게 창업을 지원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창업지원이 과당경쟁 상태에 빠져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자영업자 모두 장사가 안 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낸다. 자영업자는 2002년 800만명 수준에서 2011년 685만명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697만명으로 다시 늘었다. 선진국 예를 보면 지금도 전체 고용의 28.2%인 자영업자의 비중을 15%까지는 떨어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창업지원은 재고돼야 한다.”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보는데.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우리 제조업을 무에서 일으켜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전략, 전술, 정책을 그대로 서비스산업에 적용해야 한다. 제조업과 같이 육성해 주기는커녕 아직도 서비스산업을 역차별하는 제도가 많이 남아 있다. 금융, 통신 등의 경우 이익이 좀 늘어났다고 수수료나 요금을 깎아서 이익이 줄어들게 만든다. 이래서는 서비스산업이 클 수 없다. 이익이 나지 않는데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는가. 은행권 전체를 보면 2011년에 비해 지난해 이익이 2조8000억원 줄었다. 그러면 정부의 법인세 수입만 6000억원 가까이 감소한다. 조세수입을 늘리겠다고 온갖 노력을 하기 전에 스스로 세입을 줄이는 일부터 안 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 재원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 하면 일자리와 세수가 늘어난다.”

-창조경제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 장관들도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창조경제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모든 국민이 나도 창조경제의 주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정의하는 것이 좋다. 과거 새마을운동처럼 국민에게 친근한 개념이 돼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방법이나 경로가 무엇이든 간에 새로운 상품·서비스·부가가치·시장을 개척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모두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 공급이 넘쳐나는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수입을 나누어 가지는 것에 불과한 경우는 창조경제가 아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비롯한 첨단기술만이 창조경제의 원천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예술 수준을 높이고, 향상된 문화예술과의 접목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경로가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창조경제의 길인지도 모른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의상·핸드백·구두·화장품·장신구 등 5대 패션산업 분야는 전형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중소기업이 고급화를 추구하기 좋은 업종이다. 대량 생산보다는 수제품이 더 먹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정성, 즉 더 많은 노동 투입이 명품과 대량 생산품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에 고용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프랑스 이탈리아가 하는 명품산업을 한국이 못할 리가 없다. 대통령이 좋은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면 마케팅 효과가 클 것이다. 여성 대통령이니 이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선도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문화융성을 강조했는데.

“문화예술계의 최대 문제는 공급자는 많은데 유효수요가 너무 적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문화예술정책은 대부분 정부 예산으로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공급자 위주의 방식이다. 문화예술계가 자생력을 갖게 하려면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 정부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내수 진작책을 발표할 때 자동차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의 한시적 면제나 부동산 경기활성화 대책을 내놓는다. 자동차가 더 팔리도록 세금을 깎아줄 수 있다면 시집이나 그림, 공연 티켓이 더 팔리도록 세제지원을 해줘야 한다. 문화예술 소비지출에 대해서 소득공제를 해주고 저소득층에 대한 문화예술 바우처를 확대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이번 추경에는 문화예술 진흥책, 특히 수요 진흥책이 꼭 들어가야 한다. 정부 보조금을 더 이상 늘리지 말고 개인이나 기업의 문화예술 소비지출을 장려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출범 초기라 평가하기엔 이르다. 정부는 ‘손톱 밑 가시’(작은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목구멍에 걸린 가시’(큰 규제)부터 손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큰 규제 탓에 서비스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대한항공이 서울 경복궁 인근에서 추진하고 있는 7성급 호텔 건립사업이 몇 년째 중단되고 있다. 200m 안에 학교들이 있어 학교보건법에 저촉된 탓이다. 최고급 호텔은 교육환경 유해시설이 아니지 않은가. 호텔 건립으로 늘어날 일자리와 세수를 비롯해 경제적 효과를 감안하면 낡은 법을 고쳐서라도 해결해야 한다. 이곳 땅값만 300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들었는데 사업이 지연되면 연간 이자비용만으로도 150억원 정도 드는 셈 아닌가.”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국세청이 노력하지 않아도 세금 97%가 저절로 걷힌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이 그렇다. 탈세의혹이 있을 경우 조사해 추징하는 것은 3%에 불과하다. 물론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세금을 더 거두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더 걷히게 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고 투자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기업의 이익이 줄면 세금 감소, 주가 하락, 내수 침체, 투자·고용 위축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견고한 규제는 그린벨트와 수도권 규제인데, 노무현 정부 초기 경기도 파주에 차세대 디스플레이 공장투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규제까지 풀었다. 이렇게 해야 기업의 투자 의욕이 살아난다.”

-새 정부 들어 기관장들이 잇달아 사퇴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관장을 일괄적으로 물갈이하는 관행을 어떻게 보는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처럼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정철학’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교체하는 공직의 범위를 사전에 분명하게 정해 두어야 한다. 특히 해외시장에 상장된 민간기업의 CEO 결정에 정부가 간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잠재적 투자자까지 포함한 주주들, 즉 시장이 납득하지 않는 CEO 교체는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주가를 보면 안다. 다른 재료가 없는 것을 전제로 CEO를 바꿨는데 주가가 올라가면 잘한 것이고 주가가 내려가면 잘못한 것이다.”

-은행연합회장도 교체될지 모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을 맡아서 그런 추측성 보도는 사실무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하라면 하고 물러나라면 물러나는 것이 오래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금도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조원동 경제수석의 행정능력을 어떻게 보는가. 부드러운 현 부총리와 추진력 있는 조 수석이 불협화음을 낼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울대 법학석사, 미 워싱턴대 경제학석사, KAIST 산업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각각 다른 분야를 전공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호기심이 많아서 여러 전공을 했다. 하지만 깊이는 없다.”

-야생화 촬영이 취미라고 하던데.

“한국 미국 일본 콩고 우즈베키스탄 뉴칼레도니아 등의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름다운 꽃과 풍경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찍은 야생화 5만점 가운데 2400점을 이동저장장치에 담아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만난 사람=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 박병원 이사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서울대 법학석사 △KAIST 산업공학석사 △미 워싱턴대 경제학석사 △행시 17회 △재정경제부 차관 △우리금융지주 회장 △청와대 경제수석 △현 전국은행연합회장 △현 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 △현 국민행복기금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