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학생들 선도 ‘힐링 음악회’… 서울대 음대 기악학과 정규철씨의 재능 기부

입력 2013-04-22 19:33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애잔한 배경음악 선율이 경찰서 강당에 흘렀다. 관객은 학교폭력 범죄를 저지른 등 중고생들이다. 삐딱하게 무대를 바라보던 아이들은 차츰 자세를 고쳐 앉기 시작했다. 눈빛도 반짝거렸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기타로 이 음악을 들려준 정규철(21·사진)씨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고 했다.

서울대 음대 기악학과에서 기타를 전공하는 정씨는 재능기부 형식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힐링음악회’를 가졌다. 성북경찰서는 학교폭력 절도 등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중고생이 봉사활동 등 10시간 선도프로그램을 이수하면 훈방 조치한다. 음악회도 그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정씨는 클래식과 담을 쌓고 지냈을 아이들을 위해 영화음악이나 광고음악을 선곡했다. 일본 기타 연주자 고타로 오시오의 ‘벚꽃 필 무렵’ 등 5곡. 경쾌하고 발랄한 곡에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연주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정씨는 “한 사회적기업 대표의 소개를 받고 흔쾌히 참여한다고 했지만 처음엔 솔직히 망설였고 아이들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내 음악을 들으러 온 친구들을 위해 작은 무대 위에 앉았는데 그 친구들이 집중하는 게 보였다. 힐링이 필요했던 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정씨는 연주가 끝난 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가갔다. 한 학생이 정씨에게 머뭇거리며 다가오더니 “형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사건 가해자로 경찰서에 오게 된 이 중학교 3학년생은 “원래 꿈이 음악가였는데 여러 환경이 도와주지 않았다. 물론 노력도 하지 못했고 왜 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말문이 열리자 다른 학생들도 “꿈을 찾고 싶다” “그동안의 삶에서 벗어나 효도하고 싶다” 등의 얘기를 쏟아냈다. 정씨는 “이야기를 나눠 보니 하나하나 다 장점이 있는 친구들이었다”며 “그들이 뭘 바라고 뭘 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씨는 지난해 말부터 바이올린, 비올라를 전공하는 학교 친구들과 의미 있는 연주를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지난달 이들과 함께 모교인 경기도 분당 송림고에서 연주회와 멘토링 시간을 가졌다. 올해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는 “열정이 있어도 기회가 없어 악기를 배울 수 없었던 친구들에게 악기도 빌려주고 연주법도 가르쳐 주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