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스포츠, 출구전략 될까

입력 2013-04-22 19:19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된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주신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행사였다. 처음에는 육상단거리로 시작해 레슬링, 5종 경기, 격투기, 전차 경기 등으로 점차 종목이 확대됐다. 스포츠 행사만 개최한 것이 아니라 시인, 철학자, 예술가 등이 모여 문학, 연극, 시가 등을 겨뤘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아테네 역사 연구를 발표한 것도 올림픽에서였다. 올림픽 전후 3개월은 모든 폴리스 간 전쟁이 금지됐다. 이를 어길 경우 사후에 엄정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스는 당시에 이미 민족 동질성을 확인하고 폴리스 간 결속을 다지는 도구로 스포츠를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예부터 갈등구조 해소의 장

하지만 약 1500년간의 공백 끝에 1896년 부활된 근대 올림픽은 전쟁 때문에 중단되기도 했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올림픽은 3차례나 된다. 1500년간 과학문명은 엄청난 속도로 발달했지만 인간의 지혜는 오히려 퇴보했다고 해야 할까.

2차 대전 중 미국은 프로야구를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물론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입대하는 바람에 리그 수준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전쟁 중 관중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전시에 무슨 야구냐고 할 법도 하지만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들과 군의 사기를 감안해 리그를 강행했다. 전장에 투입된 미군들은 매일 들려오는 고향팀의 경기결과에 전쟁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역시 프로야구를 운영했던 일본은 전쟁에 몰입하기 위해 1944년부터 1년간 리그를 중단했다. 미국이 전승국이 된 원인 가운데 프로야구가 준 군의 사기진작을 꼽는 사가도 있다. 전시체제라는 암울한 시대상황에서도 스포츠는 여전히 사회적 순기능을 발휘했던 것이다.

현대 스포츠는 전쟁의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더비’로 불리는 라이벌 팀간 대결은 형태만 스포츠로 바뀌었을 뿐 상대에 대한 적개심은 전쟁 이상이다. 과거 이웃 도시 간 갈등을 전쟁 대신 현대적 방식인 스포츠로 푸는 것이다. 축구의 대표적 더비는 엘 클라시코 더비가 꼽힌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펼치는데 양 지역의 정치적 갈등을 담아 지구촌 최고의 축구 전쟁으로 비화됐다. 언어와 역사가 다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두 지역의 갈등이 축구를 통해 실제 전쟁처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 출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는 전쟁 수행을 위해 두 팀이 영입한 용병 선봉장인 셈이다.

이처럼 스포츠는 사회통합의 역할도 하고, 정치적·종교적 갈등과 적개심을 해소하는 배출구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 스포츠는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 해소하는 장이었다.

남북 경색 푸는 데 활용하길

최근 한반도 상황은 핵과 미사일이 얽히면서 어느 때보다 갈등 구조가 복잡다단하다. 평온한 국내 정서와 달리 외국에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곧 일어날 것처럼 긴장감이 고조돼 있다. 오는 25일 경기도 이천의 블랙스톤골프장에서 열리는 유럽골프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에 더스틴 존슨과 잭 존슨 등 대표적인 스타들이 한반도 위기 고조로 불참의 뜻을 밝혔다. 다음 달 전남 영암에서 열릴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인 슈퍼GT 한국대회도 취소되는 등 한반도 긴장 상황이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경색 국면을 푸는 수단으로 스포츠를 활용하면 어떨까.

1990년대 들어 남북한은 청소년 축구와 탁구 단일팀 구성, 올림픽 공동입장, 통일 축구 개최 등을 통해 긴장완화를 모색한 기억이 있다. 남북의 새 정부도 국면 타개를 위한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쟁과 스포츠에 얽힌 지구촌 역사는 이 시대 남북 갈등을 풀 수 있는 지혜를 주고 있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