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 쓰나미’ 한국경제 덮치다
입력 2013-04-22 18:13 수정 2013-04-22 22:10
달러 당 100엔대인 ‘초(超) 엔저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원화는 정반대로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덫에 빠진 우리 경제는 ‘원고(高)·엔저(低) 현상’에 발목이 잡혔다. 소비·투자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수출마저 비틀거리고 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동맹’에 우리 경제는 길을 잃었다.
22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99.76엔(오후 3시30분 현재)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말 77.6엔과 비교하면 엔화 가치가 6개월 새 22.2%나 추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원·엔 환율은 100엔당 1441.1원에서 1119.1원으로 12.9% 절상됐다. 한국은행은 올 1분기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14.4% 높아졌다고 밝혔다. 절상 폭은 2009년 4분기 이후 최대다. 외환시장에서는 100엔 시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이미 자국 화폐를 극단적으로 찍어내는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만 억제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 가치는 오르고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 우리 기업의 수출 가격경쟁력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 되면 국내기업의 총 수출은 3.4% 감소하고, 110엔으로 상승 시 11.4%가 줄어든다고 내다봤다.
수출 부진은 경상수지·기업실적 악화로 직결된다. 외국인의 국내 금융시장 이탈로까지 번질 수 있다. 7분기 연속 0%대 성장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경제가 설상가상으로 ‘엔저 폭탄’을 맞은 셈이다.
원고·엔저 현상은 과거 우리 경제를 2차례(1988∼1990년, 2004∼2007년) 강타했다. 당시 성장과 수출, 경상수지가 모두 악화됐다. 이번에는 과거와 비교해 엔화가치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 더 큰 충격이 우려되는 이유다.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탈출구’가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내놓은 대책 중 첫 번째가 상시 모니터링 체제 구축 정도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날 “만일의 상황에는 시장의 기대를 압도할 만큼 충분하고 단호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선제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로 방향을 선회할 경우 엔저 현상을 조금이나마 지체시킬 수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못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위원은 “완화적 통화정책 추진은 물론 한시적인 조건부 금융거래세(토빈세)를 도입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