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고추’ 만졌는데… “고의성 인정안돼 무죄”
입력 2013-04-22 17:46
서울 관악구에서 슈퍼를 운영하던 A씨(54)는 지난해 4월 어느 날 슈퍼 앞을 지나가던 B군(8)의 성기를 만진 혐의로 재판받게 됐다.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이라는 죄명이 붙었다.
법정에 선 A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슈퍼 앞 플라스틱 우유상자 위에 앉아 파를 다듬고 있었는데, 작업 도중 일어서는 과정에서 B군의 성기에 팔꿈치나 손 등이 부딪쳤을 수도 있다”면서도 “고의로 만진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B군도 만만치 않았다. B군은 경찰 조사 당시 “분명히 A씨가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만졌다”며 슈퍼 앞에 가게 된 경위와 추행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B군의 진술 이외의 직접증거는 없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군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허위진술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반면 A씨의 진술은 경찰과 검찰 조사 단계에서 달라져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A씨는 항소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김주현)는 B군 진술의 신빙성을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B군의 진술이 확실한지 살펴보기 위해 현장검증까지 나섰다. A씨는 그 때와 같은 상황을 재연했다. 플라스틱 상자 위에 앉아 파를 다듬던 A씨 손의 높이는 52㎝였고, 일어선 상태에서는 약 90㎝였다. B군의 성기 부분은 지면에서 70∼75㎝ 높이에 있었다.
재판부는 “현장검증 결과 A씨가 B군이 슈퍼 앞을 지날 때 일어서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팔꿈치나 손 등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피해자 성기에 닿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또 “추행 사실에 대한 피해자 진술은 일관적이지만 장면 묘사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며 “이 차이도 신빙성 판단에 중요한 참작 요소로 삼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