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처럼 부산 밤거리 주름잡던 칠성파-신20세기파… 檢 칼날에 수년째 잠잠
입력 2013-04-22 17:45 수정 2013-04-22 22:32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2일 부산 폭력조직 ‘신20세기파’ 두목 홍모(40)씨와 조직원 5명에 대해 폭행 등의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확정했다. 이들을 재판하면서 법원은 1심 52쪽, 항소심 15쪽, 상고심 4쪽 등 모두 71쪽 판결문을 작성했다. 왜 이런 형을 내려야 하는지 설명하는 판결문 곳곳에 부산의 다른 폭력조직 ‘칠성파’가 등장한다.
검찰 관계자는 “신20세기파는 부산지역 반(反)칠성파의 핵심이다. 부산 조폭의 역사는 칠성파에 대한 반칠성파의 도전으로 요약된다”고 했다. 2001년 영화 ‘친구’에서 ‘준석’(유오성 분)은 칠성파, ‘동수’(장동건 분)는 신20세기파 조직원을 모델로 했다. 동수의 뒤를 이은 조폭의 범죄 혐의를 적다 보니 판결문은 20년에 걸친 ‘부산 조폭사(史)’가 됐다.
◇20년 유혈사=판결문에 따르면 칠성파는 1993년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신20세기파 행동대장 정모씨를 살해했다. 영화 ‘친구’가 소재로 삼은 대목이다. 이후 칠성파는 잠시 주춤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최대 조직과 자금을 바탕으로 조직원들을 철저히 ‘보상’했다.
2005년 신20세기파가 다시 세력을 확대하자 칠성파는 신20세기파 조직원 황모씨를 ‘작업’했다. 온몸을 둔기로 때리고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견제 차원의 조치였고, 신20세기파는 칠성파에 맞서지 않고는 세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1월 칠성파 조직원의 장례식장에 각종 흉기를 들고 쳐들어갔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됐다.
두 조직 간 다툼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신20세기파 조직원 자녀의 돌잔치에 참석했던 동료 조직원이 칠성파 조직원을 폭행하자 칠성파 20여명은 피의 보복을 가했다. 이듬해 6월 칠성파는 부산 우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두목의 차를 운전하던 신20세기파 이모씨를 무차별 폭행했다. 이에 신20세기파 40여명은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칠성파에 대한 보복을 결의했다.
◇부산 조폭이 활개치는 이유=신20세기파 두목 홍씨는 2011년 10월 한 사찰의 납골당 이익금 분쟁에 관여했다. 행동대장에게 “형이다. 애들 몇 명 데리고 절에 올라가 거기 있는 놈들 몇 명 대○○ 깨고 온나.” 조직원들은 절에 있던 이들을 꿇어앉히고 둔기로 다리를 수십 차례씩 가격했다. 2009년 11월에는 경남 밀양의 한 농협 조합장 선거에 개입했다. 검정 양복에 ‘깍두기’ 머리를 한 조직원들을 풀었다. 이들은 “더럽게 말이 많노”라며 상대후보 측을 위협하고 폭행했다.
칠성파는 조직 탈퇴 시 손가락을 절단하기도 했다. 검찰은 칠성파 조직원 250여명, 신20세기파 90여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부산에는 두 조직을 포함해 22개 폭력조직이 활동 중이다.
기업합병과 주식투자 등 사업가로 변신하는 다른 지역 조폭과 달리 부산 조폭은 여전히 ‘힘’을 무기로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 부산에 근무했던 검찰 간부는 “부산은 섬유 등 소비재 산업이 쇠퇴한 뒤 대체 산업이 별로 없어서 오락실과 주점 등 유흥업을 둘러싼 조폭 간 ‘나와바리’(영역) 다툼이 더 치열해지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칠성파 조직원 김모(23)씨 등 15명을 우동 사건 연루 혐의로 지난 1월 구속기소했다. 같은 혐의로 다른 조직원 10명의 뒤를 쫓고 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양쪽 조직원이 대거 검거돼 다소 잠잠하지만 부산 조폭은 규모가 커서 언제 또 일을 벌일지 모른다”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