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의 딸 인숙씨 개인전

입력 2013-04-22 17:27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그림에 단골로 등장하는 단발머리 소녀의 주인공은 작가의 딸이었다. 추운 겨울 고목나무 아래에서 아기를 업고 있는 소녀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됐다. 박 화백의 딸 인숙(70)씨가 ‘도이(道利)’라는 예명으로 30일까지 서울 수송동 갤러리고도에서 개인전을 연다. ‘도이’란 세상과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는 의미다.

아버지 슬하에서 그림을 접한 인숙씨는 세종대 회화과를 나와 평생 동안 교직생활을 했다. 그런 중에 틈틈이 전시를 열었다. 2006년 인천여중 교장으로 정년퇴임 후 작업에 전념하다 올해 고희를 맞아 아버지를 모델로 전시를 열게 됐다. 유년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 고향(강원도 양구)을 소재로 한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정겹고 따스했던 순간들을 화폭에 옮겼다.

‘아버지가 닭을 쫓아다니며’(사진)라는 그림에 얽힌 작가의 추억이 아련하다. “우리 가족은 영양실조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닭죽이 잡숫고 싶다고 하시자 아버지가 돈을 꿔서 닭 한 마리를 사오셨다. 마음이 여리신 아버지는 닭의 목을 비틀지 못하고 목에 칼을 슬쩍 갖다대는 바람에 닭이 도망치고 아버지는 쫓아다니고 계셨다.”

‘감나무’ ‘빨래터’ ‘고향의 노래’ 등 출품작들은 황토벽이나 대리석처럼 보이는 두터운 질감이 특징인 아버지의 그림을 많이 닮았다. 다만 아버지가 갈색 계통으로 서민의 삶과 민족의 한을 그렸다면 딸은 은은한 녹색으로 가족의 풍요로움을 그린다. 한편 인숙씨의 동생 성남(65)씨와 성남씨의 아들 진흥(41)씨도 화가로 활동하는 등 박수근 가족 3대가 화업을 잇고 있다(02-720-2223).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