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사태’ 해법은 없나… “피해는 결국 성도 몫, 법인 찬송가공회가 결단 내려야”
입력 2013-04-22 17:23 수정 2013-04-22 21:51
‘21세기찬송가’는 한국 교회의 뜨거운 감자다. 숱한 소송과 분쟁으로 그 권위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시 살려서 계속 사용할 것인지, 아예 새로운 찬송가를 만들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찬송가 문제는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바로미터다. 한국 교회의 화해와 일치, 갱신을 위해서도 찬송가 문제만은 한국 교회 스스로 지혜와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찬송가를 둘러싼 논란을 중간 점검하고 그 해법을 모색해본다.
◇사면초가, 법인 찬송가공회=23일은 충청남도가 재단법인 찬송가공회의 법인 설립을 인가한 지 5주년이 되는 날이다. 법인 찬송가공회는 주요 교단들의 반대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3일 충청남도로부터 법인설립을 인가받았다. 찬송가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꼬인 것은 이때부터다.
충청남도는 지난해 5월 21일 법인 찬송가공회가 비법인 찬송가공회로부터 합법적으로 권리와 재산 등을 승계받지 못했다며 ‘기본재산 출연 부존재’를 이유로 법인설립을 취소했다. 법인 찬송가공회는 부당하다며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찬송가공회에 이사를 파송했던 주요 교단들이 법인 해산을 촉구한 데 이어 법인설립까지 취소됐기 때문에 법인 찬송가공회는 정치적 법적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나 법인 찬송가공회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인인가 취소의 효력을 본안소송 때까지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는 법인으로 존속하며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관련 판결들의 취지를 종합해보면 법인 찬송가공회가 승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법인 취소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와도 대법원에서 확정될 때까지는 법적으로 최종적인 처리는 미뤄진다. 문제의 해결을 사법당국에만 맡겨두면 사태는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이후 대법원에서 패소가 최종 확정되면 법인 찬송가공회는 유령단체가 돼 사라진다. 반면 승소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사태는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 등 다른 소송 수십건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이들 소송 하나하나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법인 찬송가공회는 지난 18일 충남 천안에서 이사회를 열었지만 조직적 취약성만 드러냈다. 합동측 서정배 목사와 함께 공동 이사장으로 있던 기성측 김춘규 장로는 불참했고, 새 이사장으로 내정된 예장통합 지용수 목사는 사퇴해버렸다. 찬송가 판권을 가진 교단에서 이사장을 선임하는 관례를 깨고 판권이 없는 침례교의 김남수 목사가 새 이사장에 선임됐다. 감리교와 기장은 수년째 이사를 파송하지 않고 있고 합동측 이사들은 교단파송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참석했다. 서정배 목사도 합동 총회로부터 소환통보를 받은 상태다. 법인 찬송가공회는 이제 한국교회의 공적인 연합기관이 아닌 사적인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날 총회에서는 불투명한 재정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의했지만 제대로 조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찬송가공회, 왜 둘이 됐나=한국 교회가 찬송가의 통일을 위해 찬송가공회를 설립한 것은 1981년이다. 이전에는 예장 통합과 기장, 감리교와 성결교가 연합해서 만든 한국찬송가위원회의 ‘개편찬송가’와 예장 합동이 주축인 새찬송가위원회의 ‘새찬송가’로 나뉘어 있었다. 양측은 한국찬송가위원회와 새찬송가위원회에서 위원과 총무 등을 찬송가공회에 파송해 찬송가 통일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83년 발간된 것이 지금도 일부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통일찬송가’다.
찬송가공회를 둘러싼 분란의 출발점은 통일찬송가의 출판권을 둘러싼 갈등이다. 찬송가 출판은 대한기독교서회와 예장출판사에게만 허용이 됐는데 찬송가공회는 이를 민간 출판사에도 허용했다. 기독교서회와 예장출판사는 물론 참여하는 교단들도 이를 문제 삼아 시정을 요청했지만 찬송가공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7년 발행된 21세기찬송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찬송가공회는 출판독점을 해소함으로써 품질 및 가격경쟁을 유도한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찬송가 관련 교단장협의회에서는 10인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일반 출판사의 찬송가 출간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찬송가공회는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교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인화를 추진했다. 예장 합동은 2007년 9월 총회에서 법인 불가를 결의했고 교단장들은 그해 12월 법인설립 시도를 중지할 것을 강력 권고했다. 서울시는 찬송가공회의 재단법인 설립 신청을 반려했지만 찬송가공회 공동회장이던 이광선 황승기 목사는 2008년 충청남도에 재단법인 설립을 신청해 그해 4월 23일 인가받았다.
재단법인 설립에 반대한 일부 이사들은 법인으로 가지 않고 남았지만 비법인 찬송가공회는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주요 교단 총회장들이 2011년 1월 법인 찬송가공회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공회를 복원키로 결의해 그해 8월 비법인 찬송가공회가 총회를 갖고 복원됐다. 결국 비법인 찬송가공회는 역사적 교회적 정당성을 갖고 있고, 법인 찬송가공회는 법원의 가처분결정이라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만 갖고 있는 셈이다.
◇새 찬송가, 가능할까= 비법인 찬송가공회를 중심으로 만든 새 찬송가인 ‘표준찬송가’는 이미 시안이 만들어져 있다. 통일찬송가에서 사용하던 찬송을 중심으로 530곡 정도를 선정했는데 한국인이 만든 찬송 70곡이 포함됐다. 복음성가와 CCM등 집회 찬송 70곡을 부록형태로 추가했다. 모두 저작권 무상사용을 허락받았다.
새 찬송가를 지지하는 이들은 21세기찬송가에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 막대한 저작권료를 부담하고 있다. 해외 찬송 21곡에 대해 매년 최소 수천만원의 로열티가 지급되고 있다. 이전에는 한 차례도 저작권료를 요구한 적이 없던 한국 작곡가들도 형평성을 들어 저작권료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방송 공연 음반재생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저작권과 출판권을 둘러싼 숱한 소송과 분쟁의 대상이 돼버렸다. 셋째 정치적 배려나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수록된 함량 미달의 곡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반면 법인 찬송가공회는 성도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은 저작권료를 부담하더라도 찬송가에 포함시켜야 하며 그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를 떠나 21세기찬송가를 대체할 새 찬송가를 만드는 데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따른다. 우선 성도들의 혼선이 불가피하다. 일부 교회가 아직도 통일찬송가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1세기찬송가와 새찬송가까지 모두 3개의 찬송가가 상당기간 병용될 가능성이 높다.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다. 21세기 찬송가로 바꾼 지 6년 만에 또다시 찬송가를 바꾸면 한국 교회와 성도 전체로 볼 때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 찬송가 문제 해법 위해 하나 돼야=찬송가 문제가 장기간 표류해온 것은 이를 ‘이권 다툼’ ‘이전투구’ 식으로 치부해온 대다수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무관심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역사적 맥락과 권리관계가 복잡해도 옳고 그른 것은 분명히 따져야 한다. 명백한 잘못과 과실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찬송가를 둘러싼 재정적 불법과 방만한 운영,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거쳐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다.
먼저 법인 찬송가공회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가 하나된 목소리로 결단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예장 합동과 통합, 기감, 기장, 기성, 기침, 루터회, 예감, 기하성 등 찬송가공회 관련 9개 교단은 이미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같은 입장이다. 법인 찬송가공회는 법원의 가처분결정에 기대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극도로 취약한 상태다.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된다면 한국교회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 이를 피할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다. 주요교단과 연합기구들이 한 목소리로 다시한번 결단을 촉구하고 엄중한 경고 메시지를 줘야 한다.
새 찬송가 문제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찬송가를 유지해온 전통을 이어가면서 새 찬송가를 발행하는 방안, 21세기 찬송가를 수정해서 사용하는 방안을 모두 열어놓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단,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찬송가가 이익추구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은 뒤따라야 한다.
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