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母情

입력 2013-04-22 18:39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지 5일 만인 1995년 7월 4일 지하2층 엘리베이터 입구 콘크리트 더미에서 유모차를 가슴으로 꼭 껴안고 죽은 윤난희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윤씨의 등은 무너져 내린 철근과 콘크리트 더미에 짓눌려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두 살짜리 딸은 상처 하나 없이 눈을 뜨고 엄마를 바라보는 듯 숨져 있었다. 10여일 후인 17일에는 지하3층 콘크리트 더미에서 두 살배기 딸을 품에 꼭 안은 채 숨진 허인실씨가 발견됐다. 구조대원들은 허씨가 딸을 살리려고 꼭 껴안고 웅크린 모습으로 발견돼 처음에 한 사람인 줄 알았단다. 허씨 시신은 콘크리트에 짓눌려 심하게 훼손됐지만 품에 안은 딸은 외상이 전혀 없이 숨져 있었다.

2007년 6월 캄보디아에서 항공기 추락 사고로 숨진 KBS 조종욱 기자는 추락의 충격으로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면서도 한 살 짜리 아들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사고 현장을 수습하던 사람들은 조 기자가 아이를 얼마나 꽉 껴안았는지 남은 한쪽 팔을 펴는 데 힘들었다며 뜨거운 부정(父情)에 눈시울을 붉혔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 위만만씨는 만 24시간 동안 온몸으로 몇 십 톤의 흙 무게를 버텨가며 인간 지붕을 만들어 두 살짜리 딸을 살려냈다. 그녀는 척추가 부러져 사망했고 아기를 덮은 담요 속에 있던 휴대전화에는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살아남으면 꼭 기억해다오. 엄마가 널 사랑했다”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며칠 전 규모 7.0의 강진이 강타한 중국 쓰촨성 참사 현장에서도 일곱 살 난 아들을 품에 안아 살려낸 어머니 시신이 발견됐다. 발견 당시 어머니는 숨진 상태였지만 어머니가 꼭 품었던 아들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고 한다. 2층짜리 집이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렸는데도 집안에 있던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맨손으로 여섯 시간을 잔해더미를 파헤쳐 아들을 살려낸 아버지 이야기도 들려왔다.

영화 ‘공공의 적’에는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의 범죄를 감춰주기 위해 죽어가면서까지 아들의 찢겨진 손톱을 삼켜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이 세상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살리고 싶은 금쪽같은 존재다. 식물인간이 된 자식을 수십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간호하고, 세상이 살인자라고 다 등 돌려도 보듬어주는 게 우리네 어머니들이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명언처럼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