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는 기재부… 업무 추진력 약화
입력 2013-04-21 18:36 수정 2013-04-21 15:47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취임 한 달을 맞았다. 수장이 장관급에서 부총리로 격상됐지만 청와대 입김이 세지면서 경제 컨트롤타워로서의 기재부 역할은 오히려 축소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 주도로 단행된 기재부 실·국장 인사는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기재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기재부 실·국장 인사는 발표 직전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청와대가 1급에 대한 검증 강화를 이유로 사실상 인사 결정권을 행사하며 자고 일어나면 내정자가 바뀌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기재부가 3월 말 인사안을 청와대에 제출했지만 당초 4월 초로 예상됐던 인사는 청와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면서 2주가량이나 늦춰졌다. 장관에게 인사권을 일임하겠다던 새 정부의 책임장관제 공약은 부총리 부처에서도 적용되지 않은 셈이다.
인사로 내홍을 겪으면서 기재부의 업무 추진력도 약화됐다. 대표적인 것이 추가경정예산안이다. 정부가 지난 18일 국회에 제출한 세출 추경 5조3487억원에 대한 상세 사업 내역을 보면 249개 사업 중 신규 사업은 단 5개뿐이다. 나머지 244개는 올해 예산안에 이미 잡혀 있는 기존 사업을 증액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세출 추경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기재부 저력에 비춰보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2009년 경제위기 상황에서 ‘잡 셰어링’ ‘신빈곤층 대책’ ‘희망근로제’ ‘서비스 선진화 방안’ 등 새로운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우리 경제를 회복시킨 기재부의 모습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청와대가 정책의 큰 틀을 짜면 기재부가 세부 내용을 이에 맞춰서 생산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현 부총리가 카리스마형이기보다 관리형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청와대가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기재부가 보조 역할을 하는 구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전엔 일만 열심히 하면 국장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승진하려면 청와대에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심각한 인사 적체에 세종시 피로감 등이 겹치면서 경제정책 주도권을 청와대에 뺏긴 모습”이라고 토로했다.
기재부 출신 정부 관계자는 “최근 후배들을 만나보면 불과 1∼2년 전과 달리 침체된 느낌”이라며 “장관 방을 박차고 들어가 1대 1로 맞붙어 토론하는 과장들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