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적 믿음 저버린 경찰의 축소·은폐 의혹

입력 2013-04-21 19:09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파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이어 경찰 수뇌부가 이 사건을 조사하던 수사팀에 압력을 넣어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양심선언’까지 나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 댓글을 달며 정치에 개입했다는 것은 곁가지가 될 정도로 심각한 국기문란 사안이다.

수사를 직접 담당했던 실무책임자가 주장한 경찰 수뇌부의 수사방해 의혹은 충격적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 분석 자료를 수사팀에 넘기지 않고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활용했다. 의혹을 사고 있는 국정원 직원에게 유리하게 하드디스크를 분석토록 지시했고, 압수한 증거물을 수사팀과의 상의도 없이 돌려주려고 했다. 심지어 대선을 3일 앞두고 후보자 TV토론회 직후인 밤 11시에 나온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수사팀의 반대 속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경찰 일부 수뇌부가 정치적 이유로 정당한 수사를 방해했다면 이는 용납하기 힘든 권력남용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밤낮으로 노력하는 경찰관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찰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벌써부터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의 통제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할 가능성 때문에 경찰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어제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발표한 만큼 시시비비는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지난 2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 사실관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야당에서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 책임론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특검과 국정조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은 만큼 검찰의 책임이 무겁다. 청와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지위를 남용하는 권력기관의 잘못된 관행을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