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맞서고 때론 아지트로… 인기 작가들의 등용문 가나아트 개관 30돌
입력 2013-04-21 17:15
서울 인사동의 한 건물 2층 작은 공간에서 출발한 가나아트가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26세 때부터 고려화랑에서 일한 이호재(59) 회장이 처음이라는 뜻을 담아 ‘가나’라는 이름의 화랑을 개관했다. 국내 최대의 화랑으로 부상한 가나는 미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힘썼다. 오늘의 가나가 있기까지 이 회장과 작가들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장은 1985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을 찾았다. 당시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있던 고암은 이 회장에게 “한국에서 내 작품을 없애기 위해 온 공작원이냐”고 물었다. 이 회장은 설득 끝에 고암의 작품 ‘인물 군상’을 받아 1989년 국내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이 전시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인기작가 사석원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1988년, 그림을 용달차에 싣고 가나화랑을 무작정 찾아갔다. 파리 유학 때 가나가 그곳에서 전시하는 것을 보고 “이 화랑이면 내 궁핍한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이 회장은 가져간 10점을 모두 샀다. 사석원은 “전업 작가가 되고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도와준 가나는 나에겐 중매쟁이”라고 했다.
가나는 개관 이래 국내외에서 600회 이상의 전시를 기획하고, 1984년부터 전속작가 제도를 도입해 작가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1996년부터 파리 시떼 데자르에 한국작가 입주공간을 마련하고, 2001년 서울 평창아틀리에, 2006년 경기도 양주 장흥아틀리에를 각각 조성해 60여명의 작가에게 창작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있다.
‘소나무’ 시리즈로 유명한 배병우, ‘온 에어’ 연작으로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한 김아타의 사진이 가나아틀리에에서 탄생했다. 이 회장이 미국 뉴욕에서 우연히 만나 “나중에 그림으로 갚으라”며 주머니에 있던 달러를 모두 건넨 박영남, 종로경찰서 형사가 힘든 작가를 도와달라며 이 회장에게 소개해 인연을 맺은 전병현 등 인기 작가들도 가나를 거쳤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작품 70여점이 26일부터 6월 9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컨템포러리 에이지(CONTEMPORARY AGE)’라는 타이틀로 전시된다. 가나와 동고동락했던 작가들과의 30년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다. 이 회장은 2001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9남매 중 막내 동생인 이옥경(52) 대표가 화랑을 운영 중이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