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장지영] 재키 로빈슨

입력 2013-04-21 18:05

매년 4월 15일(한국 날짜로는 16일) 미국프로야구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은 등번호 4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첫 흑인 메이저리거인 고(故)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로빈슨은 1947년 4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지금의 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백인 선수들의 전유물이었고 흑인 선수들은 니그로(흑인) 리그에서 따로 경기를 펼쳤다. 링컨 대통령이 1862년 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흑백차별은 20세기 중반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런데, 브랜치 리키 당시 다저스 단장이 니그로 리그 산하 캔자스시티에서 유격수로 맹활약하는 로빈슨을 스카우트했다. 로빈슨은 주변의 만류에도 “인생은 구경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며 도전을 받아들였다.

로빈슨이 그라운드에 서자 예상대로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다. 백인 관중들은 비난을 퍼부었고 다른 구단들은 다저스와의 경기 자체를 거부하는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상대 팀 선수들은 고의적인 빈볼 등으로 로빈슨을 괴롭히기 일쑤였고, 같은 다저스 선수 중에도 몇몇은 로빈슨과 같이 경기할 수 없다며 이적을 요구했다.

로빈슨이 데뷔한 지 한 달 뒤인 5월 14일 스포츠 역사상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관중들은 로빈슨에게 야유를 보냈다. 그때 다저스의 유격수 피 위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 포옹한 뒤 관중석을 쳐다보았다. 리즈의 동료애에 스타디움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다저스를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점차 로빈슨을 동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로빈슨은 데뷔 첫 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49년에는 MVP와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리고 로빈슨의 활약에 감명 받은 일부 구단들이 흑인 선수들을 속속 받아들이면서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전설’들이 등장하게 됐다. 로빈슨은 47년부터 56년까지 2루수로 활약하며 통산 타율 0.311, 137홈런, 1518안타의 성적을 남겼고, 62년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로빈슨이 72년 세상을 떠난 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87년 양대 리그에서 한 명씩 주는 신인상을 ‘재키 로빈슨 상’이라고 칭한 데 이어 97년 ‘재키 로빈슨 데이’를 정해 그를 기렸다. 로빈슨의 도전이 스포츠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차별을 없애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베이브 루스가 야구의 역사를 바꿨다면 로빈슨은 미국의 역사를 바꿨다.

장지영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