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의승 (6)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던 북평高 시절의 믿음
입력 2013-04-21 17:06
김영수 선생님은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만났다. 태백중학교에서 영어 특별교육반을 만들었는데 김 선생님이 방학 때면 오셔서 두 달 동안 지도를 해 주셨다. 선생님에게 영어를 착실하게 배웠다. 되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영어 실력이었다. 영어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김 선생님은 IT 전문가가 되었고 미주 삼성의 사장으로도 재직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은 정말 앞을 내다보는 분이셨다. 유선 전화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그 시절 김 선생님은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있는 동안 손목시계와 같이 손목전화기가 나와 그 전화기를 보면서 전 세계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는 놀라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의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 있지 않았는가 싶다.
중학교 때 교회에 나가지 못했던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선 크리스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다. 당시 북평고등학교에서는 ‘하이(Hi) 와이(YMCA)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지도자 없이 학생들끼리 모여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읽는 모임에 인도를 받았다. 사실상 북평고등학교에 ‘유학’을 간 것 같았던 내게 토박이들의 텃세가 심했다. 더구나 내가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해 시샘을 더욱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심성이 고운 학생들이 감싸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생들이 모두 크리스천이었다. 그들은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내게 다가왔다.
과거에 세상은 크리스천들을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들이 교회는 나가지 않더라도 자식들은 하나님을 믿고 선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한 크리스천’의 이미지는 많이 퇴색된 것 같다. 과거에는 교회가 사회를 인도하는 향도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그 선하신 분을 따르는 크리스천들은 선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다. 이제라도 교회는 세상 속에 적극적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선함을 전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다시 바뀔 것이다.
크리스천 학생들은 계속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하이 와이운동’을 펼쳤다. 밴드부 활동도 함께 했다. 당시에 혼자 자취했던 나는 무척 외로웠다. 사람이 그리웠다. 그래서 ‘선한 친구들’이 다니는 북평고등학교 옆의 송정감리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동해안 바닷가의 작은 시골 교회였다. 그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했다. 당시에 나는 피아노를 곧잘 쳤다. 교회에서 피아노를 즐겨 치면서 점차 교회에 깊이 빠져들어갔다. “교회가 아니라 성가대에 다녔다”고 할 정도로 성가대 활동에 심취했다. 믿음의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갔다. 예배당에 나가 열심히 성가대 활동을 했을 뿐이지만 점차 신앙이 자라갔다. 마치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어느 날 보니 내가 정말 크리스천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서울대 다니다 해군사관학교 시험 준비를 하러 장성에 갔을 때 장성감리교회에서 조그만 성가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해사 시험 보기 전 1주일간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다. 목사님이 교회 강단 옆에 아예 내 자리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주일학교의 추억은 평생 간다. 그 추억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변치 않는 크리스천으로 남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정리=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