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간호사의 세계] 알랑가 몰라∼ 6천명 ‘白衣신사’ 당당한 전문직을

입력 2013-04-20 04:01


간호사의 길을 걷는 남자들이 올해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간호사가 반드시 여자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내과계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김단비(26), 비뇨기과 외래 안희원(33), 정신건강의학병동 박경민(27) 간호사 3인방이 털어놓는 ‘백의(白衣) 신사’들의 솔직 담백한 얘기를 들어봤다.

운명처럼…, 새로운 도전

계명대 간호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5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김단비 간호사는 이름처럼 ‘단비 같은 간호사’를 꿈꾸고 있다. 단비는 ‘꼭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처럼 ‘메마른 사회를 촉촉히 적시는 존재가 되라’는 뜻으로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꿈이 없던 고교시절, 우연한 기회에 간호대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진로 결정의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간호사가 단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간호사의 길을 택했다.

부산 가톨릭대를 나온 3년 경력의 박경민 간호사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간호사가 됐다고 말했다. 2003년 어느 신문에 난 ‘아빠 간호사’ 기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남들이 ‘남자가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을 때 속상했지만 딸이 친구들로부터 ‘훌륭한 아빠를 뒀구나’하는 얘기를 듣고는 그 간호사의 기분이 매우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미혼인 박 간호사는 “나중에 딸을 낳는다면 나 역시 같은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경력 9년차인 안희원 간호사는 1962년 국내 첫 남자 간호사를 배출한 삼육보건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간호사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다. 99년 모 대학 건축학과에 합격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카지노학과, 만화학과, 간호학과 등 남들이 안 하는 걸 찾아서 승부를 걸라’는 고 3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자극이 됐다.

처음엔 ‘여자들이 많겠다. 재미 있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지만 남자 간호사 역할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새로운 매력을 찾게 됐다. 하지만 가족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 간호사는 “맨 처음 얘기 꺼냈을 땐 아버지에게 맞을 뻔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신다”며 웃었다.

#여성 중심 조직에서 살아남기

남자 간호사들은 1∼2년차 때 여성 중심의 간호 조직 문화와 2, 3교대의 고된 업무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직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성의 섬’에서 살아남은 세 사람의 노하우는 뭘까. ‘여성들의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라.’ ‘상황과 감정 변화를 빨리 파악하는 눈치가 있어야 한다.’ ‘유머를 활용해 대화를 즐겁게 만들어라.’ ‘존중과 배려를 잊지 마라.’ ‘힘든 일이 있으면 먼저 나서 도와라.’

세 사람은 “군대 한번 더 왔다는 마음으로 나이 어린 선배 간호사들을 깍듯이 대하면 갈등이 생길 일이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안 간호사는 “절대 남자 기준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친밀해지기 위해 ‘누나’보다는 ‘언니’라고 부를 때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간호사는 “환자나 동료들로부터 남자 간호사가 있어 믿음직스럽고 병원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하다”고 했다. 박 간호사는 “무뚝뚝한 면이 없지 않은데, 여성 동료들로부터 섬세함이나 환자와 관계 맺기 등을 배우려고 많이 노력한다”고 말했다.

#남자다운 간호사, 즐거움을 주는 간호사, 어머니 같은 간호사

김 간호사는 “남자 간호사는 한국 간호계에도 단비 같은 존재”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자 간호사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한국 간호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간호한 적 있는 19세 소년을 예로 들었다. 의식 없는 상태로 입원 중이었던 그 소년은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랐고, 어느 날 김 간호사가 깔끔하게 면도를 해 줬다. 자신이 사춘기 때 아버지에게 수염 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쑥스러웠는데, 그때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나중에 소년 부모가 “단비씨가 든든해요. 항상 형처럼 잘 챙겨줘서”라며 고마워했다.

“만약 여자 간호사라면 남자의 사춘기를 이해하고 면도를 해 줄 수 있었을까요? 이게 바로 ‘남자다운 간호’라는 걸 느꼈죠.”

그는 “남자 간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꼼꼼하게 일을 못한다, 하나에만 집중하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 등 오해와 편견이 많다”면서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면 우리는 또 다른 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김 간호사는 “간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스러운 간호를 하는 남자 간호사보다는 남성과 여성, 두 시각으로 환자를 바라본다면 더욱 입체적 간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 간호사는 병원 내에서 ‘만능 엔터테이너’로 통한다. ‘너싱테이너(Nursingtainer)’라는 신조어도 만들었다. 동료와 환자들에게 늘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간호부나 환자 대상 행사에 MC를 보거나 뮤지컬, 개그 콩트를 하고 춤도 곧잘 춘다.

최근엔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의 간호사 버전인 ‘일원동스타일’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전립선 환자들의 요실금 예방교육 영상물의 모델로도 출연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그는 “일상에 지친 동료, 병마에 힘겨워하는 환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 그걸로 행복하다”며 웃었다.

박 간호사는 “의사가 아버지라면 간호사는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 2때 어머니를 여의면서 그 빈자리를 누구보다 많이 느꼈다. 특히 아파서 외롭고 불안할 때 어머니 품이 그리웠다고 한다. 군대시절 아버지처럼 따랐던 중대장이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겉으론 전혀 아니었는데 말수가 줄고, 혼자 기타 치는 모습에서 우울함이 보였다”면서 “그때 옆에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이후 계속 남아있다”고 했다. 그가 정신건강의학병동 간호사로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간호사는 “앞으로도 마음이 아픈 환자 곁에 늘 있어 주는 간호사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민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