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권은희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19일 서울경찰청이 ‘댓글 수사를 위해 추출한 키워드 검열’ ‘증거물인 여직원 컴퓨터 늑장 반환’ ‘수사팀의 언론 대응 개입’ 등을 통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 11일 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으로부터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국정원 여직원 김모(28)씨의 컴퓨터 2대에서 임의제출 형식으로 하드디스크를 분리한 뒤 서울청에 분석을 맡겼다. 김씨가 올린 수많은 댓글 중 선거 개입 혐의점을 찾기 위해 네티즌이 주로 쓰는 정치적 단어 78개를 추출했고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댓글 내용을 분석토록 요청했다.
권 과장은 “키워드 분석 결과는 김씨의 혐의를 밝힐 핵심 증거였는데 서울청이 ‘신속한 수사’를 이유로 키워드를 4개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당시 두 차례 합동회의 끝에 우리 수사팀은 (상급기관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2월 13일 키워드 분석이 시작됐고, 대선 이틀 전인 16일 밤 서울청은 혐의점이 없다는 긴급 발표를 했다. 권 과장은 “‘혐의 없음’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보면서 수사의 핵심이 빗나갔다고 느꼈다”면서 “키워드 축소를 둘러싼 당시 상황은 서울청 공식 문건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과장은 또 “서울청이 김씨 컴퓨터에서 나온 문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일일이 김씨에게 허락을 받아가며 파일을 들춰봤다”고 주장했다. 임의제출 형식이었지만 김씨가 피의자 신분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란 것이다. 서울청이 증거물인 김씨 컴퓨터 2대를 수서경찰서 수사팀의 강한 항의를 받고서야 뒤늦게 수서경찰서에 돌려줬다고도 했다. 권 과장은 “압수한 증거품은 형사소송법상 자체 폐기하든, 본인에게 돌려주든 수사 주체인 수서경찰서가 판단할 내용이라고 적극 항의하자 그제야 넘겨줬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당시 언론 취재에 응하며 “김씨의 대선 관련 댓글에서 특정 정당과 관련한 패턴(경향성)이 엿보인다”고 밝혔었다. 그러자 경찰 고위층에서 ‘김씨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며 수사팀에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권 과장은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던 지난 2월 초 전보 조치됐다.
서울청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당초 수서경찰서에서 가져온 키워드는 ‘호구’ ‘가식적’ ‘위선적’ 등 대선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힘든 단어가 많았다”며 “김씨가 하드디스크를 제출하면서 대선후보 비방·지지 글이 있는지만 확인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 분석 범위도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서경찰서장이던 이광석 현 서울지하철경찰대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윗선 개입 의혹을 부인하며 “사건에 대해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국정원 직원 댓글 분석용 키워드 78개서 4개로 축소”
입력 2013-04-19 18:02 수정 2013-04-20 0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