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흔드는 외모지상주의] 스폰서도 광고도… 비정한 ‘얼짱 편애’

입력 2013-04-20 03:58

지난 16일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박인비에겐 3년째 메인스폰서가 없다. 그의 골프 실력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으려는 기업체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박인비 같은 특급선수의 후원비는 연간 5억원 정도. 하지만 골퍼를 후원하고 있는 굴지의 기업들이 박인비를 외면하는 이유는 금액에 있지 않다.

외모가 운동선수에게 유리한가

기업들이 운동선수를 후원하는 것은 선수들의 실력과 이미지를 매출 신장과 기업 이미지로 연결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선수가 우승하면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되고 그 선수의 후원 기업도 함께 국민들에게 각인된다. 기업 측면에선 선수가 마케팅 수단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선수들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이미지도 함께 중시한다. 바로 선수와 기업 이미지를 동일시하려는 소비자의 눈높이 때문이다.

박인비는 느릿한 스윙에다 무표정한 얼굴, 통통한 몸매이지만 실력만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하지만 기업에서는 박인비가 골프 실력 외에 모든 것이 너무나 평범하다며 후원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드에서 가끔은 웃어보라는 지적에도 “그러면 집중력이 사라져 골프에 몰두할 수 없다”고 버티는 선수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을 전후해 리듬체조선수 손연재가 국내 광고시장을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세계 정상의 선수가 아니다. 리듬체조 강국인 동유럽 선수들에 밀려 10위권에 있다가 런던올림픽에서 처음 개인종합 5위에 올랐다. 하지만 기업들은 앞다퉈 그를 광고모델로 내세웠고 지난 한 해만 100억원이 넘는 광고 수입을 안겨다줬다. 손연재의 실력보다 연예인 뺨치는 깜찍한 외모, 서구인 같은 늘씬한 체형이 인기몰이에 한몫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팬들은 탁구의 서효원(마사회), 여자프로배구의 곽유화(도로공사), 프로농구의 김은혜(우리은행), 양궁의 기보배(광주광역시청) 등을 종목별 ‘대표얼짱’으로 꼽고 있다.

반면 여자역도 헤비급에서 오랫동안 세계정상에 섰던 장미란은 공익광고와 몇 편의 상업광고에 잠시 나왔을 뿐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은 적었다.

이처럼 스포츠에도 외모지상주의가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연예계가 앞장서고, 의학계와 매스컴이 합작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외모지상주의가 스포츠에도 전이된 것이다. 이제 선수들이 연예인처럼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자신을 가꾸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됐다.

선수들의 외모는 여자선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한 설문조사에서 축구의 기성용, 배드민턴의 이용대, 수영의 박태환 등이 여성들로부터 ‘대표훈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포츠가 주는 진정한 가치는

최근 국내 모 골프잡지는 기업체에서 은밀히 나도는 여자골퍼 평가 항목을 보도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했다.

크게 ‘외모’ ‘기록’ ‘능력’ ‘성격’ ‘기타’ 등 5개 분야 가운데 선수들의 계약금을 책정하는 데 외모가 차지하는 부분이 무려 35%나 달했다. 기록(30%), 능력(20%) 성격(10%)에 비해 가장 높은 비중이었다. 예쁜 얼굴과 늘씬한 몸매, 세련된 패션 감각, 큰 키 등이 외모를 구성하는 세부 항목이었다. 또 한 가지 좋은 ‘성격’도 주요 평가 항목이었다. 회사에 감사할 줄 알고 팬들에게 유연하며 각종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은 것이 ‘성격’의 세부 항목이었다. ‘외모’에다 ‘성격’의 평가 항목을 더하면 선수의 실력을 나타내는 ‘기록’이나 ‘능력’과 맞먹는 비중이었다.

그만큼 기업체에서는 선수의 실력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수의 외모와 성격이 기업 이미지에 얼마만큼 긍정적인 작용을 할지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간혹 순수 실력만 보고 선수를 선발했을 경우도 있지만 그 선수가 기업 홍보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현장의 홍보담당자들은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연예인과 경쟁하는 듯한 선수들의 외모지상주의는 오래갈 수가 없는 법이다. 곱상한 신인선수가 덜컥 우승해 겉멋에 취해 연습을 게을리하다 긴 슬럼프에 빠진 경우는 허다하다. 선수들의 본업인 경기력 향상을 위해 지나친 외모 가꾸기는 선수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팬들은 1998년 US오픈에서 볼을 치러 워터해저드에 들어간 박세리를 오래 기억한다. 양말을 벗었을 때 검게 탄 다리와 대비된 너무도 하얀 발에서 고된 훈련의 애처로움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꼈다.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겉모습보다 내면의 감동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