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푼 ‘행성’… 그림타고 세상을 날다
입력 2013-04-19 17:43
발달장애 청소년 5명이 만들어 가는 ‘열린 행성 프로젝트’
지난 15일 서울 도곡동 5층짜리 건물 꼭대기층의 미술 작업실. 발달장애 중·고등학생 5명과 4명의 미술교사가 2시간 간격으로 들고나며 그림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신동민(19)군은 예쁜 여자 드레스에 유화 물감을 꼼꼼히 칠하면서도 유난히 부산했다. 그는 이곳에서 3년째 그림을 배우고 있는 최고참으로 발달장애 특수학교인 밀알학교 고2 학생이다. 미술교사 오윤선(35)씨는 “기자가 낯설어 동민이가 다른 때와 달리 집중하지 못한다”고 나직히 귀띔했다.
닫혀있던 행성, 드디어 문이 열린다
미술교사와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 수서동 남서울은혜교회 밀알부 교사와 학생들이다. 이들은 오는 6월의 ‘열린행성 프로젝트’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전시회를 주최하는 시스플래닛 대표이자 미술교사인 오씨는 “열린행성 프로젝트는 지난해 개최된
‘열린행성’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미술전시회”라며 “개개인이 살아가는 자신의 행성을 열어 세상과 교감하게 하는 프로젝트로 문화예술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경계를 넘어 소통케 하려는 것이 기획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해와 달리 작품 전시와 함께 영상, 다양한 분야의 아트콜라보레이션으로 아트숍까지 설치하는 등 한층 다채롭게 꾸몄다고 말했다. 또 머그컵, 손수건, 스카프 등을 제작, 판매할 계획이다.
오씨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태어나서 외부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 안에서 살아가는 ‘자폐’라는 특별한 공간에 살고 있다”며 “그래서 이들은 가식 없이 생각한 그 자체를 표현하고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작품적 특징을 드러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앤디 워홀 같이 성공한 예술가는 작품이 먼저 조명받았기 때문에 그가 가진 정신적 장애가 매력적인 스토리로 전해지는 것처럼 이들도 계속 작업을 하다보면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이 행사를 위해 박민경(35·회화 전공), 김서연(33·디자인 전공), 김승희(23·특수교육 전공)씨 등이 오교사와 함께 학생들의 작업을 돕고 있다. 열린행성 프로젝트는 6월 8∼19일 서울 일원동 밀알미술관에서 열린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청소년 작가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참여하는 신군은 작년 ‘열린행성’ 때는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한 동물 그림 위주로 출품했으나 이번에는 유화 물감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군의 어머니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만 했지 완성도 있게 그리는 줄은 몰랐다”며 “재작년에 밀알부 선생님들을 만나서 선생님들이 동민이의 재능을 끌어내주셔서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게 돼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군 어머니는 그동안 운동, 학습, 언어 등 많은 교육을 시켜봤지만 잘 웃지 않았는데 여기 선생님들은 자유롭게 풀어줘 많이 웃으며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 스스로 동민이를 적극 후원하며 선생님들과의 좋은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군과 함께 두 번째 참여하는 이동민(15·밀알학교 중2)군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선생님들은 이군이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고 칭찬했다. 그림과 동물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이군은 모든 동물에 대한 도감을 그릴 정도로 동물 사랑이 남다르다. 지난해부터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글자를 디자인하거나 동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요즘은 김서연 교사와 디자인 작업에 흥미를 부쩍 붙였다.
김정우(17·밀알학교 고1)군은 일반학교를 다니다 올해 특수학교로 진학하며 작업실에 나온 지 2개월 됐다. 정우군의 어머니는 “학원인 줄 알고 보냈는데 선생님들의 작업실이었다”며 “봉사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작은 거 하나, 사소한 거 하나에도 기뻐해 주셔서 사랑이 느껴진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과 함께 경기고 내 특수학급에 재학 중인 한승민(18)군과 손유승(17·밀알학교 고2)군도 열린행성 프로젝트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