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새샘교회] 어디 보리뿐이겠나, 우리 믿음도 매일 푸릇푸릇 자라지
입력 2013-04-19 17:25
전북 군산시 대야면 새샘교회
새샘교회는 전북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 상리마을에 있다. 지난 11일 이곳을 찾았을 때 상리마을 사방에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푸릇푸릇한 보리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큰 들이라는 뜻의 대야면(大野面)이라는 지명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마을 주변 산이라고 해봐야 구릉에 가까워 너른 평야가 가려지지는 않았다. 계절적으로는 봄이 왔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 때문에 주민들은 아직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
세련된 이름으로 거듭난 어르신들
“여기는 죄다 논밭뿐인데 뭐 볼 거 있다고 찾아오겄소잉.”
상리마을 인근에 이름난 관광지는 없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도 인적은 드물다. 고령의 주민 100여명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다. 이모작으로 벼, 보리를 재배한다. 땅이 많은 5명을 제외하고는 먹을 만큼만 수확하는 소농들이다.
성도 40여명도 거의 60대 이상이다. 이 가운데 전형적인 농촌 어르신 이름과는 동떨어진 ‘최안나’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최안나(73·여) 집사의 본명은 최말자다. 진형섭(38) 목사가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축복을 받은 안나 여선지자처럼 은혜 가운데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성경에서 안나는 예수가 ‘인간의 모습을 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인물로 기록됐다. 안나는 결혼 7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뜨자 성전에서 밤낮 없이 금식 기도했다.
최 집사의 남편은 지난해 7월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예배당과 채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믿음을 갖지 않다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하나님을 영접했다. 최 집사도 남편의 뜻을 따라 교회에 나오게 됐다. 최 집사는 “마음에 안 내켜서 (교회에) 나오지 못했는데 다니고 본께 이렇게 좋고 진작 못 나온 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성도들이 “그래도 찬양 소리도 시끄럽고 설교 말씀까지 만날 크게 들리는데도 항의 한번 안 한 게 오히려 우리가 감사하다”고 했다.
50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남편과 함께 지냈다는 최 집사는 “남편 그렇게 되고나서 어떻게 밤을 보내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하나님을 만나서 그런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이정옥(63·여) 권사는 20년 전 ‘한나’로 이름을 바꾸었다. 새샘교회 이전에 다니던 교회의 담임전도사가 “한나처럼 열심히 기도하라”며 지어줬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한나는 사무엘의 어머니다. 자식을 낳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나중에 주의 종으로 쓰임 받은 사무엘을 얻었다.
3남을 둔 이 권사는 한나와 같은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불같은 믿음을 가진 남편 때문에 한동안 속병을 앓았다. 이 권사의 남편 이승주(68) 장로는 35년 전 전도를 하는 이웃에게 “목사가 내 맘을 녹이면 1000원을 헌금하겠다”고 했다. 그 당시 1000원이면 큰돈이었다. 사실 헌금할 마음은 없었다.
“예배당 맨 뒤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완전히 깨져부렀어. 녹아내린 거야.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내용의 설교였는데 그날 철저히 회개했어. 그 다음부터는 들에 가서 일해야 하는데 예수님한테 완전히 내가 미쳤응께 교회에 가서 살았제.”
이 장로는 약속대로 헌금했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믿음이 약했던 그의 아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아내와 자주 갈등을 빚던 이 장로는 ‘나는 예수님을 안 믿으면 안 되겠다. 이해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1주일간 가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무릎기도를 하다 관절에 무리가 와 치료받아야 할 정도로 열심히 기도했다.
결국 이 장로의 기도가 이뤄졌다. 그의 아내뿐 아니라 자녀와 며느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이한나 권사는 “막 은혜 받고 나서부터 여기 저기 전도 다니고 목사님 따라서 심방도 다니고 만날 기도한다는데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특히 막내며느리 조영희(33) 성도는 농사를 짓느라 교회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남편 이병구(37) 성도를 대신해 교회 일에 적극적이다. 이 장로는 “농촌으로 시집와 고생 많이 한다. 신앙생활을 잘 해 고맙다”면서 며느리에게 웃음을 지었다.
새샘교회를 지키는 사람들
새샘교회는 1991년 12월 25일 창립됐다. 그때까지 주민들은 상리마을에서 2㎞쯤 떨어진 교회에 다녔다. 한 주민은 “눈이나 비가 오면 장화를 신지 않고는 갈 수 없었는데도 여기 교인들은 주일마다 예배를 빼먹지 않았다”며 “찻길도 뚫려있지 않아서 좁은 논두렁길을 따라 한참을 가야 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주민 10여명이 상리마을 가운데 지금의 새샘교회를 세웠다.
새로운 교회명을 짓는 데도 한참 걸렸다. 상리마을의 이름을 딴 ‘상리교회’가 후보에 올랐지만 “좁은 지역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해야 하는 사명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 때문에 제외됐다. 이밖에 멀리 보고 복음을 전파하자는 뜻의 ‘광상(廣相)’교회를 비롯해 여러 후보가 있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샘물처럼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새샘교회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처음에는 한 성도가 갖고 있던 50㎡(약 15평) 면적의 집을 임시 예배장소로 삼았다. 92년 인근의 땅 364㎡(약 110평)를 470만원에 사서 교회를 새로 지었다. 대출을 받고 성도들이 십시일반 건축비를 보태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초창기 작은 예배당은 뜨겁게 기도하는 주민들로 가득했다.
교인 수는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줄었다. 교회 건축에 팔을 걷어붙였던 어르신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고 젊은 크리스천들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마을 인구는 16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줄었다.
어느새 빈자리가 늘어가는 예배당, 열악한 재정 등 악조건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것만도 쉽지 않은 교회가 됐다. 그럼에도 교회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한결같은 믿음을 지켜온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 목사는 말했다.
특히 한봉남(77·여) 권사가 모범이 됐다. 진 목사는 “우리 교회의 새벽지기”라고 그를 소개했다. 한 권사는 오전 4시20분 예배당에 나와 불을 밝히고 강대상에 목사를 위해 물 한 컵을 떠놓는다. 눈이 쏟아진 날 교회 앞마당을 빗자루로 쓰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는 예배당 정리를 한 뒤 4시30분부터 5시까지 혼자 예배를 드린다. 다른 성도들이 새벽기도를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한 권사는 이 같은 ‘당번 사역’을 18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신께 만날 새벽 4시면 나를 깨워주시는 거 아니겄소.”
한 권사는 혼자 새벽기도를 드리다보면 3년 전 82세로 세상을 떠난 남편 박종남 권사가 종종 떠오른다고 했다. “하늘나라에 가서 아버지 품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겄소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 목사는 “두 분은 항상 다정하게 예배당에 나오시는 잉꼬부부셨다”고 설명했다.
만성심부전증을 앓아 신장이식 수술을 두 차례 한 장철완(60) 집사의 믿음도 남다르다. 장 집사는 87년 처음 수술을 받고나서 건강을 회복해 잠시 하나님을 잊었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있으니까 폐렴까지 앓았고 두 번째 신장이식 수술을 하게 됐다고 믿었다.
장 집사는 “고통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 매달렸고 그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또 은혜를 주셔서 올해 1월 장로로 피택됐습니다. 제 몸이 살아있는 한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살 작정입니다.”
예수마을을 소망하는 교회
2008년 4월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진 목사는 먼저 경로당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교회 창립주일 행사뿐 아니라 마을 잔치, 전도왕 초청 집회도 열어 어르신들이 스스럼없이 교회에 찾아올 수 있도록 힘을 쏟았다. 진 목사는 “성도 수는 얼마 안 되지만 믿음이 깊은 어르신 성도들 덕분에 큰 힘을 얻고 있다”며 “젊은 목회자인 만큼 한 분의 어르신이라도 더 영혼구원을 받으시고 천국으로 가실 수 있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했다.
무속신앙이나 유교문화에 익숙한 어르신들도 교회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2004년부터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최동옥(66) 어르신은 “마을 사람 모두를 위해 늘 기도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교회 다니면서 술 많이 먹던 버릇을 고친 사람도 있고 여러 면에서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새샘교회의 구역은 2곳에서 3곳으로 늘어났고 문을 닫을 뻔했던 교회 유아실도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진 목사는 특히 부임 이후 11명의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들이 자라나 교회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도하며 극복해야 할 일이 많다. 진 목사는 “잠시 목회자들이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중단 없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곳이 바로 농촌교회”라며 “도시와 시골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손잡고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0년 한일장신대를 나와 2005년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북 김제와 경기도 오산 등지에서 사역하다 새샘교회로 청빙받았다.
올해 새샘교회의 표어는 ‘제자 되고 제자 삼는 교회’(마 28:19)다. 진 목사는 “교회를 보기 좋게 가꾸고 확장하는 일도 물론 신경써야겠지만 가장 큰 비전은 상리마을을 예수마을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라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을 암송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새샘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10분 정도 걸린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군산IC로 나와 대야교차로에서 임피·대야 방면으로 1㎞를 이동한다. 검문소삼거리에서 김제·만경 방면으로 좌회전해 711번 지방도로로 진입해 1.8㎞를 간다. 주유소 앞에서 우회전한 뒤 490m를 이동,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 해 60m를 가면 교회가 보인다.
군산=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