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통일 불씨된 독일 니콜라이 교회 기도모임

입력 2013-04-18 18:39 수정 2013-04-18 22:31


“우리는 한 민족입니다.”

1983년 당시 동독의 작센주 북서쪽에 위치한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에 모인 청년들이 나지막이 이런 구호를 외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몇 년 뒤 독일 통일의 불씨가 됐던 바로 그 기도 모임이었다. 시작은 이처럼 ‘미약’했다.

‘바흐의 도시’로 유명한 이 작은 도시의 니콜라이 교회 제단 위에는 ‘평화의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교회 기둥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장식도 눈에 띈다. 1982년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탈출하면서 동독 내부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점점 거세졌다. 이에 독일 청년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 평화의 제단 위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면 저녁 6시부터 1시간 동안 교회 주변을 조용히 걷는 무언(無言)의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의 기도 모임이 알려지며 라이프치히에는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89년 가을, 경찰은 모여드는 시위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도시 곳곳을 봉쇄했다. 특히 ‘평화의 기도’ 시간에는 시민들의 통행이 금지될 정도였다. 동독 정부는 기도회를 중지시키기 위해 니콜라이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5·8 부정선거 이후 평화 시위의 움직임은 거세졌다. 경찰은 매주 이 기도회에 참석하는 이들을 체포했다. 그러나 교회 안 2000석 의자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시위대는 촛불을 들고 교회 주변을 둘러쌌고, 교회 창문에는 꽃을 꽂았다.

시민들의 기도 물결을 타고 통일·자유를 외치던 이들의 구호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들의 평화적인 기도와 시위는 드레스덴, 할레, 동베를린 등으로 퍼졌다. 11월 9일, 마침내 베를린 장벽은 무너진다.

‘촛불을 들려면 두 손이 필요했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촛불을 쥔 손으로는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 수 없었다.’ 이 교회 안내문에는 당시 ‘평화 혁명’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통일 후,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여전히 평화 기도회가 열린다. 주제는 실업문제부터 빈곤퇴치 등 다양하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