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남북 동질성 회복… 통일 기도운동 시작할때”
입력 2013-04-18 18:38 수정 2013-04-18 22:31
삼성꿈장학재단 손병두 이사장
“남북이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손병두(72)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은 올해로 환갑을 맞은 정전(停戰)체제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했다. 동시에 통일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시점으로 꼽았다. 6·25 이후 정전이라는 현상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통일이라는 큰 어젠다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분단국가 독일이 전쟁 없이 통일을 이룩했다는 점, 그 통일 운동이 조그마한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에서 서너 명의 기도 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 그래서 우리도 기도 운동을 통해 통일을 준비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손 이사장은 (사)우리민족교류협회와 참전국 순회 보은행사인 ‘세계평화 페스티벌 아리랑’의 상임고문으로 요즘 눈코뜰 새가 없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이뤄졌다.
만남사람= 김명호 부국장
-전쟁 폐허에서 무역규모 세계 8위로 우뚝 섰다. 정전 6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조국 분단 68년째다. 통일이 안 된 미완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폐허에서 일어섰다는 자부심도 중요하지만, 본격적인 남북통일을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제 남한만으로는 발전이 한계에 이르렀다. 북쪽과 함께할 때 G5까지 들어갈 수 있다. 통일을 하면 인구가 7000만명이 된다. 단일 국가로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진다. 여기에 북한 자원이 더해지고 국토와 시장이 넓어지며 노동력이 합쳐진다. 통일은 대한민국이 재도약할 기회를 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5월 방미를 계기로 미국 등 6·25 참전국 21개국을 도는 보은행사가 진행된다. 어떤 의미로 진행해야 하는가.
“두 가지 측면이다. 첫째는 보은과 감사다. 6·25 전쟁을 겪으며 나라가 없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게 됐다는 사실에 국민 모두가 감사하고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안보의식이다. 전쟁 세대는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다음 세대들은 전쟁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이 안보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국민이 한데 뭉치기 위해서는 6·25 전쟁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발발 원인과 우리 민족이 겪었던 비극을 후세에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이념 논쟁이 필요 없는 단순한 사실(Fact)이다. 독일은 전쟁 없이 통일을 했고 우리도 전쟁 없이 통일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전이라는 현상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통일이라는 어젠다로 접근해야 한다.”
-정전 60년이라는 것은 남북이 사상적으로, 지역적으로 갈라진 것이다. 통합을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무엇인가.
“6·25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국민들이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러시아, 중국의 자료까지 공개된 마당에 북침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역사 왜곡이다.
국민 통합의 전제 조건은 남북 간 동질성의 회복이다. 통신·방송이 자유로워야 하고 사람도 자유롭게 왕래하다 보면 동질성이 회복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정상회담을 한다고 바로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노력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도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독일 통일은 라이프치히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에서 서너 명이 통일에 대한 기도를 시작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 운동이 통일의 기초가 됐다. 통일에 대한 개념도 없고 필요성도 못 느끼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민(民)에서 출발하는 기도운동·시민운동·국민운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쪽에도 이런 염원이 전달돼야 한다.
탈북자들을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도 통일의 첫걸음이다. 통일 이후 이들은 북쪽에 가서 리더가 될 수 있다. 통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통일을 반대한다는 이들도 있다. 통일비용이 과대하게 추정된 측면이 있다. 또 남북 간 경제가 비슷하게 됐을 때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하지 말자는 주장과 같다. 북쪽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굶어죽는 이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그 이유다.”
-젊은 세대들의 안보 의식 부재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참전용사들이 교육 현장에 가서 자신의 체험을 젊은 세대들에게 알리는 것도 방법이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줄 수 있는 나라가 됐는데, 참전국들에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 은혜를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국민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전 60주년 기념사업이 올해로 끝나선 안 된다. 올해를 젊은 세대들에게 지속적으로 안보·통일에 대한 교육을 시켜 나가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남한 실상을 북한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 실상을 우리 젊은이들도 알아야 한다. 남한에서 접하는 북한 정보는 그들의 선전을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에 실상이 아니다. 탈북자 증언 등을 통해 북한 실상을 제대로 느끼게 하고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전 60주년 기념사업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 공모전이다. ‘내가 아는 6·25’ ‘평화통일을 위한 방법’ 등 여러 주제로 6·25를 되새기고 조국의 소중함 일깨우는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을 생각 중이다. 대학생은 6·25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나 평화협정, 평화통일, 핵무장에 대한 문제 등을 주제로 논문 공모를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 이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시민의식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지난 2월부터 한국선진화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회장에 취임한 이후 제일 처음 착수한 과제는 ‘시민의식 선진화’다. 정직한 사회, 남을 배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회가 정직하면 상호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쌓이면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이 되면 사회통합을 이룬다. 정직에서부터 이러한 선순환이 출발하는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지 못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것 아닌가.
“결국 도덕과 윤리의 문제다. 가진 자나 권력 있는 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도덕적 자본이 축적될 때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라는 것은 윤리를 빼놓고 성립이 안 된다.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도 나오는 것 아닌가. 윤리가 무너지면 자본주의가 성립이 안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IMF 경제 위기, 동남아부터 출발한 부패한 자본주의, 미국의 카지노 캐피털리즘이다. 윤리가 빠지면 경제 위기가 온다.”
손 이사장은 누구… 재계·교육계·언론계 두루 거쳐 長 직함 29개 ‘대한민국 마당발’
손병두(72)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기관이나 단체, 학교 등에서 지금 갖고 있거나 거쳤던 장(長)의 자리는 모두 29개다. “버리고 벗어도 자꾸 모자가 늘어난다”고 본인이 표현할 정도로 여기저기 ‘모셔 가는’ 곳이 줄을 서 있다. 현재 쓰고 있는 모자만 4개다. 재계, 교육계, 언론계, 사회단체 등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마당발’이 됐다. ‘만나는 사람을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정성껏 섬기는 자세로 대했다.’ 그의 인간관계론이다.
2005년 전임 총장 3명이 잇따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며 서강대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때, 그는 ‘구원투수’로 불리며 총장에 취임했다. 이후 후원금 1800억원을 모으는 등 학교 교육 역량을 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월급은 모두 학교발전기금으로 냈다. 총장 임기 중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지내며 ‘대학 자율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손 이사장은 특히 통일·안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문제로 교육계가 시끄러웠을 당시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자의 도리”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그룹 비서실에 근무하며 고(故)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과 인연을 맺었고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지내며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각중 경방 회장을 보필했다. 또 동서경제연구소, 한국생산성본부, 서강대 등 직장, 기관, 단체 15곳에서 일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총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 하마평에 올랐지만 “제의가 들어와도 집사람이 아파 돌봐주는 게 우선”이라며 폐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던 아내를 먼저 생각했다.
△경남 진양(72) △경복고, 서울대 경제학과, 헐트인터내셔널비즈니스스쿨(경영학) △삼성그룹 이사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서강대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KBS 이사장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현) △통일경제연구협회 이사장(현) △숙명학원 이사장(현) △한국선진화포럼회장(현)
정리= 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