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언어도단
입력 2013-04-18 18:30
“상식과 동떨어진 北식 화법은 생떼에 굴하거나 맞서는 극단적 선택의 강요”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8선을 따라 동시다발 공격을 가한 북한은 오전 11시 평양방송을 통해 “남조선이 북침해 자위조치로 반격을 가해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 수상은 “리승만 괴뢰 정부의 군대가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며, 공화국 경비대와 인민군대에게 반격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는 이런 주장이 먹혀들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쪽이 3일 만에 수도를, 25일 만에 대전을 점령당하고 8월 1일에는 낙동강까지 밀린 전황만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1994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서 받은 6·25전쟁 관련 비밀문서에 “김일성의 요청을 스탈린이 승인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됐다”는 내용이 명시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한의 주장은 다시 한번 거짓으로 확인됐다.
요즘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발언들을 보면 6·25 북침론이 떠오른다. 협상에서 거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벼랑 끝 전술임을 감안해 거친 어법을 용인한다손 치더라도, 말의 앞뒤가 맞지 않고 상식이나 통념과 동떨어져 있다.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18일 한국과 미국을 향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모든 도발행위들을 즉시 중지하고 전면 사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 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독수리 연습을 겨냥한 듯 “다시는 우리 공화국을 위협하거나 공갈하는 핵전쟁 연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을 세계 앞에 정식으로 담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두 훈련은 정례적으로 실시하던 것이다. 훈련의 수준과 강도가 높아진 것은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제3차 핵실험 등 북한으로부터 도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지, 우리 쪽에서 먼저 칼을 벼르는 것은 아니다. 도발행위를 중지하고 사죄해야 할 곳은 도발에 대처하려는 쪽이 아니다.
핵과 장거리 미사일 문제에 관한 북한의 태도는 매우 모순적이다. 정전협정을 백지화한 지난달 5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은 미국과 한국 등이 북한의 ‘평화적인 인공지구위성 발사’와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핵실험’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개월 전인 2011년 10월 8일 나온 이른바 ‘10·8유훈’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핵과 장거리 미싸일, 생화학무기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충분히 보유하는 것이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임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장거리 미사일을 과학위성인 광명성 3호기를 탑재한 우주로켓이라고 주장하고 북핵 위기 당시 핵시설은 에너지 생산을 위한 평화적 목적이라고 강변하더니 3종의 반인륜적 무기를 한 다발로 무력수단화 하고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개성공단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우리 정부의 대화 촉구에 대해 18일 남측 책임론을 거듭 주장했다. 개성공단이 북에도 이득을 주기 때문에 함부로 폐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리 언론의 전망 기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권력이 언론을 입맛대로 요리할 수 없는 남한 체제에 대한 몰이해는 납득할 수 있지만, 우리 정부가 반복해서 개성공단 유지 입장을 천명하는데도 언론을 핑계 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군이 개성공단 인질 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연습한 것을 두고도 서슬 퍼렇게 반응했지만 국민의 안위 앞에 안이한 태도를 취할 국가가 어디에 있겠는가. 개성공단이 양측 모두에 이득이 된다는 것은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다. 경제이익과 직결된 민간의 영역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이 남북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어떻게 존엄을 훼손하는지 모를 일이다.
국제사회는 일방의 주장만 펴고 이를 관철시키는 곳이 아니다. 말이 되지 않는 주장만 거듭하는 것은 생떼에 굴복하거나 맞서는 양단 사이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려면 끊긴 언어부터 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