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부부 강간죄’ 공개 변론… 남편측 “가정 보호-부부관계 특수성 고려해야”
입력 2013-04-18 18:02 수정 2013-04-18 22:40
“무자비한 성폭행 감수, 아내의 의무 아니다!”
“형벌이 부부 침실까지 들어가선 안 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8일 대법정에서 ‘부부 강간죄’ 성립 여부를 두고 공개 변론을 열었다. 2011년 남편 A씨(45)가 외박한 아내와 다툰 뒤 아내 B씨(41)를 흉기로 위협한 뒤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사건이었다. 2001년 결혼한 이 부부는 두 자녀를 낳고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해 왔다. A씨는 원심에서 특수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검찰 측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양성평등 관점에서 유죄를, A씨 측은 가정 보호와 부부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먼저 A씨 측 신용석 변호사는 “남편을 처벌하는 것은 부부 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가정 보호’라는 국가적 의무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부부간 의무에 강간을 받아들일 것까지 포함됐다고 보는 것은 헌법상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측 참고인은 법리적, 정책적 면에서 강하게 맞붙었다. A씨 참고인으로 참석한 윤용규 강원대 교수는 “2009년 부산지법에서 부부 강간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측 참고인인 김혜정 영남대 교수는 “양성평등에 대한 국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부부간 강간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반박했다. 한 대법관은 검찰 측 김 교수에게 “그릇이 금간 경우 새로 때워서 쓸지, 버릴지를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질의했다. 김 교수는 “수사 기관이나 법원에서 가정 보호 사건으로 처리해 가정을 회복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하면 정상적 부부 관계에서 강간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례가 된다. 대법원은 1970년 부부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으나 2009년 이혼하기로 합의한 부부간의 강간죄를 인정한 적이 있다. 영국 미국 독일 등에서는 모두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고 있지만 일본은 정상적 부부간의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