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성령은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입력 2013-04-18 17:15


사도행전 19장 1∼7절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묻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왜 성령에 대해 듣지도, 알지도, 받지도 못했을까요. 성령을 소개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존재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듣지 못하니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성령 받은 사람들을 통해 일어납니다. 지금도 신학자나 목회자, 성도들 가운데 성령 세례, 성령 충만, 성령 은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모르면 부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무엇보다 체험이 중요합니다. 아는 것으로 그쳐서 안 됩니다. 반드시 체험을 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며 축복입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믿음은 생명력 없는 이론에 불과합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경험하고 성령의 옷을 입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쳐 나야 합니다. 성령 세례, 성령 체험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이는 믿음의 기본이며 필수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받아야 할 주님의 선물이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시고 사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령께 전폭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방법, 자기 고집, 자기 능력을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더 이상 육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영의 사람입니다. 영의 사람은 생산적인 사람입니다. 봉사, 충성, 전도의 원동력은 성령 충만입니다. 생산적인 사람이란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생산하지 않는 것은 소비하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은 소비의 사람입니다. 만약 전도, 선교, 충성을 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생산적인 소비의 사람은 영의 사람이 아닌 육의 사람입니다. 잠겨 있는 것과 흘러넘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에 잠겨만 있으면 안 됩니다. 흘러넘쳐 다른 사람까지 적실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증거와 역사가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최상 최고의 영광이며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인생 최고의 가치이며 기쁨이 됩니다. 평안이 넘쳐 납니다. 성령의 생수가 우리 배에서 흘러넘쳐 다른 사람들까지 마시게 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부르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나눠주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 없으면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행 3:6)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결코 없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끊임없이 나누는 기쁨의 역사가 넘쳐 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소원합니다.

유재필 목사(순복음노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