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볼트와 너트

입력 2013-04-18 18:39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다. 지난 주말 귀 얇은 모녀가 함께 TV홈쇼핑을 시청하다 홀리듯 사버린 철제 행거 두 세트. 사람 키만한 박스를 뜯고 빠진 부속품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마디 하신다.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넌 그게 그렇게 재미있냐?”라고.

아버지와 오빠의 출장이 잦은 관계로 집안일 중에 ‘수리’ 자가 들어가는 일은 거의 내 몫이었다. 두꺼비집의 퓨즈 교체부터 간단한 컴퓨터 수리, 새로 산 기계의 설치, 조립까지. 그러다 보니 재미가 붙은 것인지 아니면 기본적으로 공구 들고 하는 작업에 취미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조립해서 만드는 일이 참 재미있다. 특히 스패너로 볼트와 너트를 돌려 끼우고 조이는 일을 좋아한다. 볼트와 너트의 홈이 서로 딱 맞아떨어져서 호리병에 깔때기로 물 붓듯이 쏙 빨려 들어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마치 본체와 한 몸으로 성형되어 나온 것처럼 단단하게 조여진 볼트와 너트, 그리고 그 힘으로 버티고 서서 조금씩 제 모습을 갖춰가는 물건들. 간단하고도 단순한 작업이지만 순조롭게 조립이 끝나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온전히 서서 제 역할 다하는 것을 보면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반대로 손바닥이 빨갛게 불이 날 정도로 돌려댔는데도 들어가기는커녕 홀컵을 뱅뱅 돌며 안 들어가는 골프공처럼 겉돌 때가 가끔 있는데, 이런 때는 우격다짐으로 돌려봤자다. 오히려 잘못 맞물려 옴짝달싹도 못할 수 있으니 손에 힘을 빼고 볼트와 너트의 홈을 잘 살핀 후 살살 달래듯이 돌려 넣으면 거짓말처럼 쏙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볼트나 너트가 불량품이라는 최악의 경우에는 부품 교체가 정답이지만 말이다.

행거 두 개를 조립했더니 그것도 일이라고 어깨, 팔, 허리에 골고루 피곤이 올라앉았다. 골골대며 누워 있는데 잠시 들른 외삼촌이 앉자마자 청와대를 향해 볼멘소리를 날리기 시작했다. 장관 인선 강행에 대한 불만, 장관 후보들의 사퇴 릴레이로 인한 불신, 그리고 기대했던 새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격앙된 목소리는 듣는 마음까지 무겁게 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나라의 내각을 세우는 일만큼 중하고 급한 일은 없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지 않던가. 서둘러 억지로 끼워 넣은 나사는 부러지거나 튕겨져 나가 결국 전체를 망가뜨린다. 사람을 쓰고 조직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