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맞바꾼 조선여인 유녹주의 사랑
입력 2013-04-18 17:21
김별아 장편소설 ‘불의 꽃’
한 여인이 왕의 명으로 저잣거리에서 참형된다. 대신의 아내로서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게 그 죄목. 여인은 전 관찰사의 아내 유녹주, 그녀와 사통한 남자는 조선 개국공신 조반의 장남이자 왕명을 출납하는 지신사(知申事) 조서로이다.
김별아(44)의 신작 장편 ‘불의 꽃’(해냄출판사)은 세종 5년, 지신사(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인 조서로와 통간한 죄로 참수된 유씨 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왕조실록의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通姦)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라는 짧은 글귀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김별아는 “당시 통간 사건이 생기더라도 남자는 죽은 적이 없다”라며 “서로 사랑했는데, 혼자 처형당한 유씨 부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녹주는 돌팔매를 맞으며 참수됐지만, 조서로는 유배형을 받았을 뿐이다. 작가는 “도덕적인 통제가 강했던 15세기 문치주의 체제 속 여성들의 현실에 주목했다”며 “개인의 사적인 사랑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16세기엔 딸에게도 재산을 분할하는 상속 개념이 생겼지만 세종 때는 거열(수레에 묶어 사지를 찢는 형), 능지처참으로 벌한 기록만 60여 건에 달하지요. 세종조차 과도한 징계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을 나중에 했을 정도였죠. 반면 조선시대에 통간 사건으로 처형된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소설은 그가 기획한 ‘조선 여성 3부작’ 가운데 세종의 며느리 순빈 봉씨의 동성애 스캔들을 다룬 ‘채홍’(2011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미실’(2005년) 을 비롯, 역사 배경의 작품을 특화하고 있는데 대해 그는 “조선조 땐 간통 사건이 일어나면 여자의 목을 베거나 매달아 죽였지만 결국 사랑은 없어지지 않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그 당시의 자리에서 독자들이 그 사건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세 번째 작품은 자신의 선택으로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여인을 다룰 예정이다.
올해 등단 20년을 맞은 그는 “‘혼불’의 최명희 선생님은 작품 속 캐릭터를 만들 때 생년일시를 정하고 사주까지 봤다”라며 “저는 가족 관계에 주목해 인물의 성격을 분석한다”고 말했다. 엄한 아버지와 고집 센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조서로는 부모를 잃은 뒤 자신의 집에 맡겨진 녹주와 친구가 됐기에 둘은 각자 다른 배필과 결혼한 뒤에도 유년 시절 서로에게 위로 받았던 경험과 애정 때문에 상대를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선정적 소재인 간통을 다루고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사랑의 순정을 표현하기 위해 유려하고 정제된 언어를 활용한 게 돋보인다. “서로가 더넘바람에 흩날리는 녹주의 자분치를 쓰다듬으며 한탄했다”(295쪽)라든지 “언젠가 들었던 그 말, 그러나 녹주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불티 대신 분분한 재를 보았다”(299쪽) 등이 그것. 그는 “작가는 모름지기 모국어를 잘 써야 한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순우리말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