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고됐던 무상보육대란 이제라도 바로잡아라

입력 2013-04-17 18:36

새로운 복지정책을 시행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지속가능한지 따져보는 일이다. 한번 시행한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면 그동안 혜택을 받던 계층의 반발이 커 뒤집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원이 계속 뒷받침될 수 있는지와 불요불급한 정책인지가 중요하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0∼5세 영·유아 무상보육 확대정책은 그런 점에서 우려가 많았는데 벌써 문제가 터지고야 말았다. 당장 서울시의 경우 광진·동대문·성북 등 9개구가 지난달로 1년치 가정양육수당이 모두 바닥났다고 한다. 지금은 보육료 예산에서 끌어다 양육수당을 지급하고 있지만 7월쯤에는 보육료 예산까지 바닥날 지경이다. 6∼7월 서울을 시작으로 10∼11월에는 부산, 충남, 경북 등까지 보육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소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영·유아 자녀를 둔 모든 가정에 시설보육료나 양육수당을 획일적으로 지급하기로 한 데 있다. 지난해 0∼2세 무상보육대란 위기를 겪고도 정치권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란 점에서 무상보육확대 정책을 밀어붙였고, 정부는 무능하게 끌려갔다. 올해 초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올 가을 제2의 보육대란이 올 것”이라며 “예산안이 통과된 올해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가겠지만 내년에는 다시 뒤집어야 한다”고 실토했을 정도다. 문제가 발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단 시행해보자고 밀어붙인 정치권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이제 어쩔 셈인가.

지자체들은 무상보육예산부담 비율을 서울의 경우 20%에서 40%, 지방은 50%에서 70%로 올리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 지원금을 늘리는 임시처방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시행하더라도 이제는 정책효과를 면밀히 점검해 지속가능하고 불요불급한 정책이 아니라면 선별복지로 전환하는 게 맞다. 영국이 고소득층 자녀에 대한 아동수당을 없애는 등 선별복지로 전환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양육수당 몇십만원을 주거나 시설보육료를 대주는 것이 아이를 더 낳는 유인책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우리나라로선 출산율을 높이고 여성들의 고용을 확대하는 정책이 시급하지만 무상보육확대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무상보육으로 재정부담이 늘어난 지자체들이 국공립 어린이집 신·증축을 포기하고 출산장려금을 없애는 등 다른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있다는데 이는 더 큰 문제다. 출산율을 높이고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으려면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사내 보육시설이나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고 임금이나 승진 등에서 차별받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