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보스턴

입력 2013-04-17 18:37

보스턴은 미국 독립의 상징과 같은 도시다. 영국의 식민정책에 항거한 보스턴 차 사건, 영국군의 발포로 시위대가 희생된 보스턴 학살 사건이 일어났고, 독립전쟁의 첫 전투인 렉싱턴 콩코드 전투가 벌어진 곳도 보스턴 인근이다.

초기 이주자들은 이곳 지형을 따 트리마운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 청교도 이주민들이 주류를 형성하자 1630년 유력 인사들의 고향이었던 영국 링컨셔주의 보스턴에서 지명을 따 새 이름을 붙였다. 1820년대부터 아일랜드계 이주가 늘면서 케네디 가문이나 10년간 하원의장을 지낸 토머스 오닐 같은 유명한 정치가들이 보스턴에서 배출됐다.

보스턴은 주요 항구이자 제조업 도시이면서 동시에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다. 미국 최초의 공립학교가 1635년 이곳에서 문을 열었고 지금도 하버드와 매사추세츠 등의 대학이 있다. 골퍼들이 옷 등을 넣어 다니는 직사각형 바닥의 보스턴백은 보스턴대 학생들이 들고 다니던 데서 유래한다.

미국과 영국 사이 갈등이 고조되던 1770년 5월 5일 보스턴 세관 외곽을 지키던 영국군은 민간 시위대를 향해 명령도 없는 상태에서 발포해 5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보스턴 학살 사건이다. 1773년 12월 6일에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면세품 차를 미국에 판매하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배에 올라가 밤새 45t에 이르는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국은 보스턴항을 봉쇄하고 식민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을 통과시켜 압박했지만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 초기인 1775년 4월 대륙군은 보스턴 주둔 영국군을 봉쇄했다. 보스턴만의 해군으로부터 보급이 차단당한 영국군은 11개월이나 계속된 집요한 봉쇄에 무릎을 꿇고 바다로 물러갔다.

보스턴 마라톤은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이 성공을 거둔 이듬해 시작됐다. 첫 대회는 18명이 참가하는 작은 지역 행사였으나 이제 전 세계 2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로 성장했다. 행사가 열리는 4월 셋째 월요일 애국자의 날은 렉싱턴 콩코드 전투가 있었던 날이다.

15일 보스턴에서 발생한 테러는 미 건국사에서 보스턴이 차지하는 위치 등을 볼 때 미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이나 명분이 무엇이든 민간인을 상대로 한 공격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스포츠 축제, 그것도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 맨몸 상태나 진배없는 시민들을 겨냥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