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손영옥] 의욕만 앞선 ‘반구대 청장’

입력 2013-04-17 18:18

신임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반구대 청장’으로 통한다. 사학자 시절, 10년 넘게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살리기 시민운동에 매진했고, 청장이 된 것도 그게 계기가 됐다. 반구대 암각화를 살려달라고 각계 인사를 만났는데, 야당 의원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과도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취임 이후 행보도 반구대 암각화 살리기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보존 대책 마련을 위한 전담팀을 꾸렸다. 청장은 물론 전담팀 명함에도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를 프린트해 대외에 의지를 알렸다. 취임 한 달이 안 된 지난 11일, 중앙지 기자단을 현지 초청해 훼손 현장을 보여주는 설명회도 가졌다.

그런데 이번 반구대 암각화 전시는 의욕이 좀 지나치다. 문화재청은 산하 고궁박물관에서 21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반구대 암각화 전시를 갖는다는 보도자료를 예고도 없이 17일 보내왔다. ‘그림으로 쓴 역사책-국보 반구대 암각화, 물속에 잠깁니다’라는 타이틀 아래 암각화 관련 각종 탁본과 사진자료 등을 볼 수 있도록 했다. 20일 개관식을 갖는 전시에 임박해 사흘 전에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는 없었다.

탁본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10일 대여해 달라는 공문을 받았다며 어리둥절해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선 한 해 전시 기획이 1년 전에 이뤄지며, 통상 작품 대여 요청은 3개월 전에 마무리되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지난 6일 청장의 검토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2주 만에 급조된 졸속 전시인 셈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문화재적 가치와 훼손 현실을 알리겠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과정이 문제다. 서두른 전시는 질을 떨어뜨려 관람객의 공감을 반감시킬 수 있다. 또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쓸데없는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암각화 보존 방안을 놓고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대립하고 있는 터라 청장의 과속이 더욱 우려스럽다.

손영옥 문화생활부 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