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진 후 약 처방, 위법 아니다”
입력 2013-04-17 18:17
의사가 전화 통화로만 환자를 진찰한 뒤 약을 처방해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같은 사건 피고인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판례와 배치된다. 의료계도 우려를 나타냈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병원을 방문한 적 있는 환자들에게 유선전화로 문진한 뒤 약을 처방해 준 혐의로 기소된 의사 신모(48)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처방전의 발급 주체를 ‘자신이 진찰한 의사’ 또는 ‘직접 진찰한 의사’로 제한하고 있는 의료법 조항에 대한 해석이었다. 대법원은 ‘자신이’나 ‘직접’이 반드시 ‘대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 진찰이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환자의 용태나 질환에 따라 전화 등을 통한 진찰 방법이 매우 부적절한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행위를 형사처벌하려면 법률상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비대면 진료 남용을 방지할 다른 수단도 있고,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 세계 각국이 원격의료 범위를 확대하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신씨는 2006년 1월∼2007년 5월 한 번 이상 병원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환자들에게 전화 통화로만 진료하고 모두 672차례 ‘살 빼는 약’을 처방해 준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신씨는 해당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도 냈는데 헌재는 지난해 3월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의료법상의 ‘직접 진찰한’은 ‘대면해 진료한’ 이외에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다”며 이번 판결과 반대 해석을 내놨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처방이라는 것은 각종 진찰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의료 서비스의 최종 결과물”이라며 “듣고 묻는 것만 가능한 전화처방 행위를 인정한 것은 의료전달 체계의 근간을 흔들 뿐 아니라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 수 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반면 서울대 의대 김주한 교수는 “의사가 평소 봐오던 환자에 대해 같은 처방을 내리는 경우에는 전화 등을 이용한 원격 처방도 허용돼야 하는 게 맞다”면서 “환자들이 병원을 오가는 데 드는 비용이 1조4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