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아이러니… 가해학생은 봉사·피해학생은 자퇴

입력 2013-04-17 18:01 수정 2013-04-17 22:11


서울 구로구의 K고교 1학년 P군(16)은 지난달 26일 학교에서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P군이 점심시간에 우유팩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다가 동급생 Y군에게 우유 방울이 튄 것이 발단이었다. Y군이 휘두른 주먹에 P군은 광대뼈·턱뼈가 함몰되고 시신경 일부가 손상됐다. 전치 7주 진단. 지난 4일 대학병원에서 5시간에 걸쳐 얼굴뼈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시력에는 큰 지장이 없어 다행이지만 제대로 된 식사는커녕 환부가 부을까봐 눕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 지내고 있다.

가해학생 Y군이 받은 징계는 고작 교내봉사 5일이었다. 지난 9일 개최된 이 학교 학교폭력자치위(학폭위)가 우발적 사건으로 결론 냈기 때문이다. P군 어머니는 “우리 애는 밥도 못 먹는데 그 아이(Y군)는 수업도 받고 웃으며 학교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P군은 완쾌되면 Y군을 피해 지방으로 전학 가거나 자퇴할 계획이다.

피해학생들이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던 교육부의 학교폭력대책이 현장에서는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피해학생 전학 조치는 삭제되고 가해학생 강제전학 규정이 신설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피해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교육부는 피해학생 전학규정이 삭제됐다는 이유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피해학생들은 가해학생의 추가 폭력이나 보복 등이 무서워 쫓기듯 학교를 떠난다. 전학에 따른 시간적·경제적 비용, 교육환경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 등 2차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경북의 한 중학교에서 중3 학생이 같은 반 2명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한 일이 밝혀졌다. 학교 측은 피해 학부모가 상해진단서를 내밀자 그제서야 차일피일 미루던 학폭위를 열었다. 피해 학부모는 가해 학생들의 강제전학을 바랐지만 교내·외 봉사에 그쳤다. 피해학생은 대구시로 전학 갔다.

피해학생이 전학 가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로 가해학생들의 보복 우려다. 경기도 이천의 한 피해학생 어머니는 “걔들(가해학생)과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부모 입장에서 가슴 졸이는 일이다. 아이가 귀가할 때까지 조마조마하고 낯빛이 조금만 어두우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학교 관리자와의 갈등도 이유다. 김재철 학교폭력피해자 가족협의회 정책실장은 “학교 측은 학교폭력을 덮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피해자들이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벌어지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P군 아버지도 K고교 교장과의 다툼을 전학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그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나쁜 ○○’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학교에 대한 기대를 접고 전학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들 간병과 직장 때문에 학폭위 일정을 변경해 달라는 요구도 묵살됐다고 했다. 피해자 참여 없이 교내봉사 5일이라는 학폭위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K고교 교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며 해명을 거부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