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화폐개혁, 김정은 政敵 제거용”… 위키리크스 폭로

입력 2013-04-17 17:58 수정 2013-04-17 22:07

2009년 11월 단행된 북한의 제5차 화폐개혁이 권력승계를 위한 정지작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북한 정권이 후계구도 수립을 앞두고 나이 어린 ‘차기 영도자’의 잠재적 정적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화폐개혁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선양(瀋陽) 주재 미 총영사관이 2010년 1월 7일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등에 전송한 1급 기밀 문건에는 류첸셩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북한 무역투자 자문공사 위원장’이란 직함과 ‘랴오닝성 기업인협회’ 회원으로 소개된 그는 평양을 빈번히 드나들며 중국의 대북 투자를 실질적으로 조정하는 인물로 묘사돼 있다. 북·중 교역의 막후 실력자로 소개된 그에 대해 선양 총영사는 인적사항에 대한 기밀사항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문건에는 류씨가 미 관리들에게 북한 화폐개혁을 둘러싼 복잡한 배경을 설명했다고 적혀 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화폐개혁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심화되던 노동자와 교역업무 종사자 사이의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표면적인 목적이 있었다. 북·중 접경지대를 통해 대북투자 형태의 ‘핫머니’(투기 목적 단기 부동자금)가 유입될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속사정도 등장한다. 당시 외화에 비해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고 있던 북한 통화 가치에 대한 관리도 강조됐다.

특히 후계구도 수립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경제적 탄압에 착수했다는 측면이 화폐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지목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화폐개혁을 통해 당시까지 ‘김정운’으로 알려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 대한 승계 작업에 힘을 실으려 했다는 것.

하지만 화폐개혁의 실패로 인해 상업거래는 마비상태가 됐고, 2012년을 목표로 야심차게 개발 전략을 추진하던 북한 정권은 결국 북·미관계 개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는다고 문건은 분석했다. 화폐개혁 실패는 정권 붕괴에 대한 ‘과대망상적 공포심’을 심화시켰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후 북한 정권은 실패의 책임을 물어 관계자들을 대거 숙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