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가닥 털 ‘한 땀 한 땀’… 홈런치는 고릴라 실감나네∼
입력 2013-04-17 17:35
아시아 첫 100% 3D 촬영영화 ‘미스터 고’ 제작현장
육중한 몸매의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 그것도 매우 잘한다. 중국 서커스단에 있던 고릴라 ‘링링’이 한국 프로야구단에 스카우트된다. 정식 프로야구 선수가 된 고릴라, 치는 것마다 홈런! ‘링링’은 한국의 슈퍼스타가 된다.
7월 개봉 예정인 한국영화 ‘미스터 고’(감독 김용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정말 이걸 영화로 만들겠다고?” 아무리 ‘국가대표’(2009)로 관객 848만명이라는 흥행성적을 낸 김용화(42) 감독이라도 고릴라가 야구하는 영화를 찍겠다고 하자 반응은 썰렁했다.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킹콩’ 같은 실사영화니 말이다. 게다가 몇 년 전만 해도 국내에 컴퓨터그래픽(CG)이나 시각효과(VFX)로 고릴라를 만들 기술이 거의 없었다.
16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덱스터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 감독은 울먹이다시피 말을 시작했다. “‘국가대표’의 큰 성공 이후 왠지 모를 허무함에 빠져 6개월간 방황했다. 내가 얻으려고 했던 것이 이거였나 하다가 운명처럼 찾아온 영화가 바로 ‘미스터 고’다. ‘킹콩’에 고릴라 장면이 800컷이라면 이 영화는 1000컷이 넘는다. 해외에서도 어려운데 한국에서 가능할까. 그래도 제 자신을 넘어보고 싶었다.”
해외 스튜디오를 수소문했지만 예산이 터무니없었다. 할리우드 기준으로 뽑은 특수효과 비용은 약 1000억원. ‘미스터 고’의 제작비는 225억원, 이 중 특수효과에 쓸 수 있는 비용은 120억원 정도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회사를 차리자. 김 감독이 사재 30억원을 털어 2011년 ‘덱스터 디지털’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처음엔 8명이 시작했다. 이날 찾은 스튜디오에서는 180명의 청년 아티스트들이 ‘할리우드의 ILM’(조지 루카스 미국 감독이 만든 특수효과 스튜디오)을 꿈꾸며 컴퓨터 모니터 안의 고릴라를 매만지고 있었다.
엄청난 비용 절감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김 감독은 “1년 동안 사전 조사를 확실하게 해 비용 누수를 막았고, 직원 모두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전투력’이 고조돼 똘똘 뭉쳐 밤을 샜다”고 설명했다. 특수효과를 총괄한 정성진(41) 슈퍼바이저는 “기반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정말 해냈다는 생각에 개봉을 앞두고 가슴이 쿵쾅거린다”고 말했다. 입체 3D 디지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처음부터 끝까지 3D로 촬영한 영화는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가상의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고릴라 대역 연기자가 얼굴과 몸에 센서를 붙이고 연기를 하면, 컴퓨터 화면에는 고릴라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감나는 고릴라 연기를 위해 할리우드의 동물연기 달인을 ‘모셔와’ 훈련을 받기도 했다. 물론 사람과 고릴라의 신체 구조가 달라 이 같은 방법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여기에 수작업으로 보완을 해서 고릴라의 동작이 만들어진다.
고릴라의 ‘털’은 가장 기술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바람에 흔들릴 때, 물에 젖었을 때, 땅에 넘어졌을 때, 물기가 마를 때 각각 다른 털을 표현해야 한다. 이 회사는 ‘질로스’라는 시스템을 독자 개발해 무려 100만 가닥의 털을 ‘한 땀 한 땀’ 다듬어 냈다. 이런 공정을 거쳐 이날 언론에 살짝 공개한 고릴라는 기대해도 좋을 만큼 생동감 넘쳤다.
야구장에 모인 2만∼3만명의 군중 역시 앞에 보이는 100여명을 제외하고는 ‘군중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인공지능을 가진 군중들이 알아서 파도타기 등을 하도록 제어되는 시스템으로 이 역시 한국영화에는 처음 도입된다.
김 감독은 “그래도 이 영화는 기술력이 아니라 캐릭터의 진실함으로 승부하고 싶다. ‘미스터 고’는 단연코 ‘국가대표’나 ‘미녀는 괴로워’보다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