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의승 (4) 서울대생, 36대 1 경쟁률 뚫고 해군사관학교로

입력 2013-04-17 17:21


지난 인생길에서 하나님은 늘 나를 세미하게 인도해주셨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 즉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셨다. 해사 시험을 칠 때에도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느꼈다. 당시 나는 서울대 시험을 칠 때와 마찬가지로 효창동 친척집에 머물렀다. 시험은 경쟁률이 36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지만 합격했다.

해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신체검사에 통과해야 했다. 청량리의 해군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청파동에서 답십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내 옆 좌석에 마침 해군대위가 앉아 있었다. ‘시골 촌놈’이었던 내가 서울 생활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차에서 내릴 곳을 정확히 찾는 것이었다. 버스 차장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한 두 정거장 지나치기 일쑤였다.

나는 옆의 해군 대위에게 “저, 청량리의 해군병원에 가는데 혹 내리는 곳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부탁했다. 당시 나는 서울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 대위가 나에게 물었다. “서울대생이 왜 해군병원에 가지요?”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위한 신체검사를 하러 갑니다.” 이후 그분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다. “서울대가 더 좋은데 왜 굳이 해사를 가려 하나요?” “사실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의예과에 떨어지고 생물학과에 붙었습니다. 그래서 사관학교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거기서 제 꿈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그분은 나를 기특하게 보셨고 이후 20∼30분간 더 이야기했다. 자신도 해군병원에 간다면서 함께 내리면 된다고 했다. 청량리 해군병원 정거장에서 내린 이후 헤어졌다. 그해 해사는 응시자가 너무 많아서 일단 신체검사에서 가능한 한 많은 지원자를 떨어뜨리는 정책을 썼다. 신체검사 당일에 함께 해사 시험을 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시력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검사에서 시력 저하로 바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내가 보기에 시력이 멀쩡했던 그 친구가 불합격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생이 저렇게 결정될 수도 있구나’라면서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시력 검사에는 합격이 됐다. 문제는 피부 검사할 때 나타났다. 내 등에 몇 개의 여드름이 났던 모양이었다. 의무중사가 “피부염은 전염성이 있으니 불합격”이라고 말했다. 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그저 단순한 여드름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 중사는 피부염이라면서 “이제 가보라”고 했다. 그때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까 버스에서 만난 해군 대위였다. 그 대위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어, 학생이 여기 있네…”라고 활짝 웃었다. 그 대위는 청량리 해군병원 피부과 과장이었다. 그는 내 등을 보더니 “이거, 전형적인 여드름이네. 건강의 상징이야”라고 웃으면서 의무중사에게 “아무런 전염성이 없다”고 말했다. 의무중사는 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검사 대기자들이 너무나 많아 그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나와야 했다. 이후 평생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 대위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그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다시 서울대로 돌아와 생물학과를 졸업했을 터이고,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은퇴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곧잘 내게 “도대체 어떤 ‘물주’가 있기에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려왔습니까?”라고 묻는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물주가 있긴 있습니다. 아주 신실하고 정확한 물주지요. 바로 ‘조물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분이셨다. 나는 1959년에 해사 17기로 입교했다.

정리=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