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춤 출 멍석을 깔아줘라

입력 2013-04-17 18:35


요즘 각국 정부의 최대 공통 관심사는 세수증대다. 방법이 ‘지하경제’ 척결에 꽂혀 있는 것도 비슷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좀처럼 경기가 반등세를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재정충당마저 어렵게 되자 기업들의 해외세금 탈루 창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몸값이 높아졌다. 이곳이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 유수 언론사와 공동으로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의 이메일 200만여 건을 분석, ‘탈세 인사’들의 면면을 속속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요즘 꼬리를 무는 장관들의 비밀계좌를 통한 탈세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정부 등이 ICIJ와 언론사에 관련 자료 제공을 요청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정부가 기자들에게 정보를 좀 달라고 손을 벌리는 것은 이례적일뿐 아니라 언론학 연구 대상이 될 만하다. 그만큼 각국 정부가 세수증대에 묘책이 없어 쩔쩔매고 있음을 방증한다.

각국 정부, 기업 세금때리기 붐

그렇다면 조세피난처를 뒤져서라도 자국 기업들의 해외탈루를 막아 텅빈 나라곳간을 채우려는 지하경제 척결 방안은 성공 가능성이 있기는 한 것일까. ICIJ가 최근 맛보기로 공개한 각국 조세피난처 주요 고객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장 자카 오기에. 그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선거자금 공동 재무담당자이자 친구다. 올가 슈발로바. 그는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의 부인이다. 하산 고잘은 어떤가. 바로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딸이다. 물론 대통령도 버진아일랜드 고객이다. 포자만 나폼제지라는 친나왓 태국 총리의 전 올케 언니, 즉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전 부인이다.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아들 미르잔 빈 마하티르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캐나다 페이너 머천트 상원의원의 남편 토리 머천트 등 선진국 후진국 막론하고 전·현직 정치인과 그 피붙이들의 이름이 수도 없이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기업인들은 우리를 잡겠다고 하더니 정치인과 고위 관료, 심지어 대통령과 총리 친·인척의 해외 비밀자금은 도대체 뭐냐고 역공을 취할 것이 뻔하다.

그동안 새롭고 획기적인 정책이라며 떠들어 놓고 알찬 성과를 낸 역대 정부를 본 적이 별로 없다. 기업들은 십중팔구 앓는 소리 하면서도 4년 또는 5년에 불과한 정권 임기 동안 해결되지도 않을 방안을 비웃으며 아마 지금쯤 새로운 ‘세금 해방구’를 찾고 있을 것이다.

지하경제 척결 방안은 일벌백계의 효과나 일반국민들로부터 일시적이나마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줄 수는 있다. 범죄성 세금을 거둬 국가경제를 살리려는 것은 경제성이 너무 떨어진다. 범죄인 잡기는 사법기구의 몫이지 경제정책 당국의 몫은 아니라고 본다. 세금탈루를 막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면 그만이다.

다그쳐서는 투자 활성화 난망

그보다는 기업들이 돈을 풀지 않는 이유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최근 아베노믹스를 내세운 아베 신조 정권이 물가상승률을 2%로 높이기 위해 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있지만 일본기업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교도통신 최근 보도를 보면 일본 100대 대기업이 내부유보금 명목으로 쌓아놓은 돈이 99조엔(1100조원)이나 된다. 삼성전자 LG전자 롯데그룹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도 돈을 쌓아놓기만 하고 투자계획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다.

망나니를 동원해 다그치기만 하면 주눅이 들고 반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매를 들기보다 멍석을 깔아 주고 그 위에서 춤을 추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줘야 한다. 일자리가 창출돼야 세금도 걷힐 것이다. 그게 선순환이고 창조경제의 출발이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