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순천이 정원을 만든 까닭
입력 2013-04-17 18:38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순천시민들은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해 도로변 화단에 정성스럽게 꽃을 심고 자원봉사 대학생들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플래시몹을 선보이는 등 전남 순천시 전역이 정원박람회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순천시는 2009년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린 제61차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 총회에서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 개최 도시로 선정되자 정원박람회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가지와 순천만 사이에 위치한 34만평 부지에 수목원과 83개 정원을 만들고 42만4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떠올리는 프랑스 정원, 풍차와 튤립이 화려한 네덜란드 정원, 르네상스시대 메디치가(家)의 빌라 정원을 재현한 이탈리아 정원, 빅토리아시대 정원을 엿볼 수 있는 영국 정원 등 세계의 정원을 한 곳에 모은 것이다.
지난해 개최된 여수엑스포를 비롯해 국제 이벤트는 도시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유치된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올림픽과 박람회 등을 계기로 국고를 지원받아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행사가 끝나면 일회용품이나 다름없는 시설물은 대부분 철거되고 남은 시설물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유치 목적이 도시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국고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정원 조성에 투입되는 사업비 대부분을 순천시가 부담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오로지 순천만을 보존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국제정원박람회를 유치했다.
생태도시를 표방하는 순천시는 다른 도시가 산을 깎고 바다를 매립해 아파트와 공장을 세울 때 순천만을 복원해 생명의 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는 철새들의 비행에 방해가 된다고 전봇대 282개도 뽑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순천만 입구인 대대포구의 음식점을 몇 년에 걸친 집요한 설득 끝에 외곽으로 이전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덕분에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가 10년 만에 10배로 늘어나는 등 국내 최고의 생태관광지로 거듭났다.
하지만 급증하는 방문객들로 인한 자동차 매연과 소음, 그리고 팽창하는 도심은 순천만의 항구적 보존을 위협하게 되었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순천시는 자연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심공간, 전이공간, 완충공간, 절대보전공간으로 나눠지는 생태축을 만들었다. 절대보전공간인 순천만의 습지를 복원하고 순천만에서 5㎞ 떨어진 전이공간에 공원을 만들어 순천만을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순천시의 이러한 생태복원 및 보존 계획은 국제정원박람회를 유치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일회성 이벤트인 산업박람회와 성격이 사뭇 다르다. 여수엑스포가 천문학적 돈을 투입해 각종 시설물을 만들었지만 3개월 후에는 대부분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목원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국제정원박람회장은 행사 후에 철거할 시설물을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순천시는 6개월 동안 열리는 국제정원박람회의 관람객 목표를 400만명으로 잡았다. 한 해 순천만을 찾는 관광객 300만명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목표 달성을 못해 호된 질책을 받았던 여수엑스포를 의식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람객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생태계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 때문이다.
순천의 정원과 수목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감소하는 시설물이 아니다. 10년 혹은 100년이 지나면 더욱 풍성해지는 정원과 수목원은 후세를 위한 자산이기도 하다. 시간의 옷을 입은 국제정원박람회장이 순천만과 함께 한국의 생태문화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