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서 울고 웃는 후배들 덕에… 악동, 뒤늦게 철 들다

입력 2013-04-17 17:27


콘서트·예능 무대 종횡무진 ‘대세男’ 길

이 남자, 요즘 대세다. 본업인 뮤지션으로 살 땐 힙합 듀오 ‘리쌍’의 이름으로 전국 공연하러 다니고, 토요일 저녁엔 좀 덜 웃긴 예능인으로 MBC ‘무한도전’에 등장한다. 금요일 밤 케이블 채널 Mnet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오브 코리아 시즌2(엠보코)’에선 참가자를 조련시키는 ‘길 코치’가 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에 깜짝 등장도 했다. 헤어 드라이기를 들고 민머리를 매만지며 2초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남자, 바로 가수 길(본명 길성준·36)이다.

지난 9일 엠보코 녹화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악동’이라 쓰인 티셔츠 차림. 하지만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선 뭐랄까,

‘원래 이렇게 반듯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뒤늦게 철든 남자 특유의 ‘긍정과 성실’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는 엠보코에서 지난 시즌에 이어 가수 신승훈 백지영 강타와 함께 코치로 나온다. 자기 팀 색깔에 맞는 지원자를 훈련시킨 뒤 다시 무대에 세우는 프로그램. 그날도 팀원들에게 창법부터 노래 부를 때의 감정까지 터치하며 세세하게 짚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디션 프로지만 순위를 의식해 예상된 공식을 따르기보단 자유로운 무대를 보여주는 게 그의 강점이다. “음악하면서 제일 중요한 건 개성이죠. 하지만 그 개성 안에 리듬, 음정, 멜로디 등 기본기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어요.”

네 명의 코치는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정(情)도 많아 매회 탈락자들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어제 녹화 때 강타가 H.O.T 해체하고 10년 만에 처음 울었대요. 승훈이 형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선 ‘26년간 나 한 번도 안 울었는데 나 울 뻔 했어’ 그러더라고요.” 이 프로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배운 게 더 많다”고 했다. “한 참가자가 꼭 한 번 따뜻한 조명 아래 서고 싶었다는 얘기를 듣고 ‘길, 너 정말 행복한 줄 알아야 된다’고 스스로 엄청 혼냈어요.”

1996년 힙합 그룹 ‘허니 패밀리’로 발을 디딘 그에게도 춥고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이 작은 마이크 하나로 세상을 살 순 없어도 흔들리는 날 지켜줄 순 있기에….’(2002년 리쌍 1집 수록곡 ‘러쉬’ 중) 노래하며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그다. 1집 발표 뒤 힙합 뮤지션으로 자리 잡긴 했지만 대중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한 건 4년 전 TV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면서부터다.

“예능 4년차 되니 이젠 100% 알아보세요. 처음엔 누가 저를 알아보는 것이 불편했는데 이젠 감사해요. 1년이 언제 갔나 할 정도로 바빴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10년만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돌이켜보면 지난해엔 유독 시련이 많았다. MBC 노동조합 파업으로 반년 가까이 ‘무한도전’ 방송을 쉬었다. 공연전문 기획사 ‘리쌍컴퍼니’를 설립해 무한도전 멤버들과 하려했던 ‘슈퍼7’ 콘서트는 공연 시간대 및 티켓 가격 논란에 휘말려 중단됐다.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친한 형 윤도현은 1년 새 길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길은 달라진 건 딱 하나, 산을 좋아하게 된 것뿐이라고 했다. ‘100대 명산’ 지도를 펼쳐놓고 전국 투어를 갈 때마다 산을 찾아 다녔다. “맨 처음엔 빨리 올라가야지 했는데 가다보니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그래, 쉬엄쉬엄 가자 하니 그때부터 주위가 보였어요. 아 여기에 저 나무가 있었구나. 그래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난 작은 존재인데, 남 가슴 아프게 만들며 살 이유가 없는 거다. 그러다보니 아직 많이 멀었지만 배려심도 생긴 것 같고….”

욕심을 내려놓고 한결 편안해진 모습. 그래서일까. 요새 그의 예능감이 살아났다는 평이 많다. ‘무한도전’ 얘기가 나오자 “그저 감사할 뿐”이라며 말수가 확 줄었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듯했다.

화제를 그와 자주 사우나를 다녔던 친구 싸이(36)로 옮겼다. 표정이 확 달라진다. “얼마 전 ‘아이언맨 3’로 내한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한국의 싸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거 보면서 울 뻔 했어요. 내 친구, 쌍둥이 아빠 정말 대단해. 싸이는 전 세계 60억 인구를 머리에 두고 곡을 쓰고 만들어요. 계속 잘 돼야 해요.”

부럽진 않을까. “리쌍도 국제무대에 진출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우린 우리 밥그릇을 잘 알아요. 우리 랩은 순수 한국말이기 때문에 전달력에 한계가 있죠. 미국 뉴욕에 가서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겠어요.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공연장이로 살 거예요. 늦게 철든 거죠.”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