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은빛 멸치… 봄을 털어낸다

입력 2013-04-17 17:20


부산 기장군 대변항 멸치털이 시즌

“어야디야 하나 둘, 어야디야 하나 둘….” 비옷으로 무장한 어부들이 흥겨운 후리소리에 맞춰 봄을 털어낸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그물이 펄럭일 때마다 손가락 굵기의 왕멸치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허공으로 튕겨 올라 춤을 춘다. 멸치비늘로 뒤범벅이 된 어부들의 얼굴에서 떨어진 땀방울도 파편처럼 부서진다. 보랏빛 어둠이 내려앉은 항구엔 어느덧 비린내 대신 어부들의 땀내음으로 생기가 돈다.

멸치가 생선으로 대접받는 유일한 곳이 있다. 전국 멸치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부산 기장군의 대변항이 바로 그곳이다. 길이가 10∼15㎝나 되는 기장멸치는 기장미역과 함께 임금에게 진상하던 특산품. 특히 요즘 잡히는 봄멸치는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한데다 씨알도 굵어 국물 맛을 내는 조연이 아니라 횟감으로 사랑받는 주연급 생선이다.

하루종일 멸치 굽는 냄새가 고소한 기장 대변항(大邊港)은 ‘가장자리가 큰 항구’라는 뜻. 한때 부산과 경북 포항 사이에 위치한 항구 중 가장 큰 어항이었다. 죽도라는 섬이 가로막아 호수처럼 잔잔한 항구는 반달 모양의 해안선을 따라 건어물을 파는 가게와 음식점, 그리고 좌판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산하던 항구는 이른 아침 대변항에서 16㎞ 떨어진 청정어장으로 조업을 나갔던 멸치잡이 어선이 귀항하는 오후 서너 시부터 부

산해진다.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는 어선들이 갈매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항구에 속속 도착하자마자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멸치털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죽방렴으로 멸치를 잡는 남해와 달리 대변항에서는 멸치를 유자망그물로 잡는다. 유자망(流刺網)은 그물을 수면에 수직으로 펼쳐서 조류를 따라 흘려보내면서 멸치가 그물코에 꽂히게 해 잡는 어구로 폭은 10m 정도로 좁지만 길이는 2㎞가 넘는다. 멸치를 그물과 함께 둘둘 감아온 어선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멸치를 분리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를 탈망작업, 즉 멸치털이라고 한다.

멸치털이는 어부들에게는 가장 힘든 작업이지만 구경꾼들에게는 신나는 볼거리이다. 비옷을 입은 10여명의 어부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후리소리와 함께 그물을 터는 장면은 살아있는 민속놀이. 노련한 어부가 “어야디야”를 선창하면 나머지 어부들이 “하나 둘” 장단을 맞추며 익숙한 솜씨로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그물을 턴다.

후리소리는 어선마다 독특하다. 어떤 어부들은 “어야디야, 하나 둘”로 소리를 주고받지만 어떤 어부들은 “쉿쉿, 츳츳” “치잉치잉, 치잉치잉”으로 후리소리를 대신한다. 1㎞가 넘는 그물을 30∼50개나 털어야 하기 때문에 후리소리가 길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장단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리드미컬한 후리소리에 어깨가 들썩이게 마련.

‘기장 대변 바닷가/ 은빛으로 눈부시게 살다가/ 죽어서도 은빛을 버리지 않고/ 그물에서 무참히 털리고 있다// 진황색 햇살의 반사로 더욱 윤기나는/ 은은한 별빛같은/ 적막한 죽음의 의식과는 거리가 먼/ 죽음조차 시시하다고 증언하는/ 하얀 천사들의 청징한 눈빛들’(김규태 ‘멸치의 죽음’ 중에서)

은빛 멸치가 그물에서 분리돼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장면은 장관이다. 후리소리에 그물이 출렁일 때마다 멸치는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바다에 쳐놓은 그물 속으로 떨어진다. 대가리가 몸통과 분리된 멸치는 젓갈용으로 사용되고, 운 좋게 몸이 멀쩡한 녀석들은 횟감으로 식탁에 오른다.

대변항에서 멸치잡이를 하는 어선은 10여 척으로 대부분 20∼30t급 소형어선. 멸치잡이가 워낙 고된 노동이라 요즘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파도가 잔잔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멸치가 많이 잡힐 때는 대낮처럼 불을 밝혀 놓고 밤늦게까지 멸치털이를 할 때도 있다. 어부들의 비옷과 얼굴이 멸치의 은빛 비늘로 뒤덮이고, 아낙들은 어선 주위로 몰려와 부둣가 밖으로 떨어지는 멸치를 플라스틱 대야에 잽싸게 주워 담는다. 갈매기 떼도 멸치 맛을 보기 위해 하얗게 날아든다.

칼슘의 보고로 불리는 멸치가 언제부터 잡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814년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 의하면 멸치를 한자어로 추어라고 하고 그 속명을 멸어라고 했다. 정약전은 멸치가 불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밤에 등을 밝혀 움푹 팬 곳으로 유인해 광망(匡網)으로 떠올린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에 본격적으로 멸치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병란 시인은 ‘썩고 썩어도 썩지 않는 것/ 썩고 썩어서 맛이 생기는 것/ 괴고 괴어서 삭고 곰삭어서/ 맛 중의 맛이 된 맛’을 젓갈이라고 노래했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동해에서 잡히는 기장멸치는 대부분 젓갈로 가공돼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하지만 산란기인 봄가을 잡히는 기장 왕멸치는 지방질이 풍부하고 씨알이 굵어 횟감으로 더욱 인기가 높다.

멸치털이가 끝나고 어둠이 짙어지면 대변항은 전국에서 몰려든 미식가와 좌판에서 멸치를 파는 부산 아지매들의 억센 사투리로 더욱 시끌벅적해진다. 연탄불로 구워내는 왕멸치의 구수한 냄새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멸치회의 고소한 맛에는 청정해역인 기장의 봄바다 향기가 그윽하게 스며 있다.

부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