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기독인 아침기도회 “北 도발 극복… 기도보다 더 강한 무기 없죠”

입력 2013-04-16 18:06


“핵과 미사일로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보호하신 하나님이 우리 미래도 책임져 주십니다.”

평안북도 사투리가 섞인 박준남(밀알교회) 목사의 설교를 듣는 이들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몇몇은 주먹을 불끈 쥐고서 “아멘”하고 화답했다.

16일 오전 7시 서울 구기동 이북5도위원회 5층 강당에서 열린 ‘제 115회 이북 기독인 아침 기도회’. 70여 좌석을 거의 메운 이들은 대부분 고희를 넘긴 이북 실향민들이다. 2003년 10월21일 처음 개최된 기도회는 이후 단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월 셋째주 화요일마다 이어져오고 있다.

연일 북한의 도발 위협이 이어지는 요즘, 그들 사이에서도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김정은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통일이 되려면 3대 족벌부터 빨리 무너져야 돼.”

기도회에 참석한 최고령자인 손원섭(87·평남 강동출신·이대교회) 집사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낡고 두꺼운 지갑을 꺼내보였다. 5만원권과 1만원권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250만원쯤 된다고 했다. 그는 “나는 평생을 ‘전쟁난다 전쟁난다’는 소문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며 “갑자기 전쟁이 터지면 피난을 떠날 만한 몸상태가 아니라서 아들하고 손자한테 줄 돈을 이렇게 넣어다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손 집사처럼 전쟁을 경험한 실향민들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어쩌면 기도회에 참석하는 발걸음을 10년째 잇게 만든 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북 기독인 아침기도회의 태동은 아나운서 출신인 차인태 전 평안북도 지사 시절인 2003년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평해전(2002년 6월)에 이어 NLL(북방한계선) 침범 등 북한의 도발이 잦던 시기였다. 1회 기도회 때부터 지금까지 설교자로 나서고 있 박 목사를 비롯한 몇몇 이북 출신 기독인들이 “기도보다 큰 무기가 있겠느냐. 한달에 한번이라도 모여서 기도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일부 타 종교인들의 우려가 제기됐지만 나라를 위한 기도 모임이라는 설명에 더 이상 반대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북기독인회 회장인 박용옥 평안남도 지사는 “이 곳에 오신 분들은 60년 넘게 고향에 돌아갈 날을 고대하면서 기도해 온 분들”이라며 “850만 명의 실향민들을 대표하는 기도 용사들이나 다름없다”고 치켜세웠다. 특히 한반도 위기론이 거센 시기였던 북한의 1·2·3차 핵실험과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을 당시 이들의 기도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간절했다.

3년 전부터 아침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는 박배증(74·충무성결교회) 원로 장로. 기도회가 열리는 날이면 오전 6시부터 나와 강당을 쓸고 닦는다. 6·25전쟁이 터졌던 1950년 12월 1·4후퇴 때 함흥 흥남부두를 떠나 남한으로 온 그는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복음을 전해 듣고 신앙을 갖게 됐다. 그가 60년 동안 깨달은 믿음은 단순했다.

“통일도, 평화도 인간이 만드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뤄지는 과정이에요. 우리요? 하나님께 무릎 꿇고 매달릴 수 밖에 없어요.”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