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2008년 금융위기 극복 선봉 윤증현 前기획재정부 장관

입력 2013-04-16 18:21 수정 2013-04-16 18:24


“지하경제 양성화는 필요… 경제활력 떨어뜨리지 않아야”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4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은 -4.6%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2009년 28조4000억원의 사상 최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그해 0.3%에 이어 2010년 6.3% 성장으로 ‘V’자 반등에 성공했다. 외국으로부터 ‘교과서적 경기 회복’이라고 찬사를 받은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의 선봉에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었다. 뚝심과 추진력으로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윤따거(큰 형님)’로 불리는 그가 지금의 한국경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궁금해 지난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뒷 건물에 자리한 ‘윤경제연구소’를 찾았다.

만난 사람=이명희 논설위원

-요즘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미약하나마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고,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심각하다고 하는데 누구 말이 맞나.

“어떤 앵글로 보느냐,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고 보느냐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이 교차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대외경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는데 특히 미국 주택시장이 상당부분 안정되고 있고, 실업률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유로존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어느 정도 미봉되는 걸로 보이고 일본도 아베노믹스로 소비가 살아나고, 중국도 경착륙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경제를 들여다보면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고 있지 않다. 통계를 보면 7분기 연속 0%대 성장이다. 근래에 보기 힘든 저성장 추세다. 아직도 불확실성이 상당히 지속될 소지가 있고, 글로벌 경제도 반대 앵글로 보면 가야 할 길이 굉장히 멀다. 저성장 초입 단계에 있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새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까지 낮췄다. 6개월 전 4% 전망치를 짠 것도 같은 공무원들인데 추경 편성하기 위한 엄살 아닌가.

“공무원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예산심의에 참여한 사람들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예측이란 건 어차피 빗나가기 마련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6개월이면 짧은 기간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완전할 수도 없다. 정권이 바뀌니까 새로운 조명,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전열을 가다듬는 차원에서 보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종합적으로 상황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근거 없는 장밋빛 환상을 주기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종합적인 판단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정부가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다고 하는데 적정한가.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것이다. 새 정부가 증세는 안 한다고 하니 결국 대부분 차입에 의존해 국채를 발행할 텐데 재정건전성도 지켜야 할 또 하나의 목표니까 차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세입부족 12조원은 불가피하다 해도 나머지는 용처를 잘 따져봐야 한다. 저성장 늪에 빠진다고 하니 성장잠재력 확충에 1차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자리 문제이므로 직업교육 등에 투자해야 하고, 물적 투자는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인해내는 부분에 써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 추경까지 한다는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시각차가 존재할 수 있다. 일장일단이 있을 수 있고 성급하게 뭐라 하긴 어렵지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정책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엇박자를 내면 국민과 시장에 혼선을 가져온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물가상승 압력에 제일 유의해 왔다. 하지만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지금까지 시장안정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인 통화신용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개되고 있다. 아베노믹스라고 해서 일본 중앙은행은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통화를 무제한 방출하고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3차, 4차 양적완화를 하며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론에 대해 얘기한다. 현재 물가상승 압력은 1%대로 크게 보이지 않지만 경기부진 상태는 굉장히 심각하다. 더구나 우리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선 통화신용정책이 정부의 재정정책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모습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많은데.

“일본의 지난 20년과 유사한 측면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상당기간 지속되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 일본이 1970년대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에서 시작해 고령사회(14%)를 거쳐 2006년 초고령사회(20%)까지 가는데 36년 걸렸다. 우리는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데 26년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큰일이다. 그 사이에 빨리 경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없다. 일본과 다른 측면도 없지 않지만 부동산 침체나 저성장 늪에 빠지는 우려 등 일본 닮아가는 부분들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하다.”

-새 정부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135조원이 필요하다. 복지와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텐데.

“경제성장의 궁극적 목표가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이니까 복지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고 당연한 것이다. 문제

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복지행정을 펼 것인가다. 복지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쓸 것인가 두 가지에 귀착되는데 복지수요 충당은 국채발행이나 증세, 재정절감 등 세 가지 방법 중 폴리시믹스(정책조합)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복지비용이 낮다고 하지만 남북 대치에 따라 국방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복지는 몇 가지 원칙이 있어야 한다. 자활의지를 도와줄 수 있는 복지, 능력 없는 노약자·병약자를 위한 맞춤형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안타까운 것은 최근 국세청이 지하경제 척결을 위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인다는데 시장에서는 아우성이다. 이렇게 해서 복지재원을 얼마나 마련할지도 의문이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지금 시장에서는 경제활력 떨어뜨리고 분위기를 경직시킬 것 같으면 차라리 정식으로 세율을 올리거나 세목을 늘려서 걷어가는 게 낫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인지 큰 그림이 나왔으면 좋겠다. 최종적으로 유의해야 할 것은 복지를 재정수입에 맞춰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걸 거꾸로 하면 나라재정이 파탄난다.”

-경제민주화 요구도 무시할 수 없고,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 투자도 이끌어내야 하고 딜레마다.

“폴리시믹스가 필요하다. 성장과 분배를 선순환시켜야 한다. 공평한 복지, 공평한 분배가 이뤄지면 성장동력의 추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경제력이 감당하는 범위 내에서 복지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민주주의도 어떤 복지도 물적 토대, 즉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가능하면 경제원리대로 움직이는 사회가 제일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사회다. 대기업의 순기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먹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부가가치의 원천을 창조하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이 주주도 종업원도 먹여살리고 나라엔 세금을 내고 사회엔 기부를 한다. 그러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해지다보니 특정 대기업들이 공정경쟁 질서를 파괴하거나 독과점으로 흐르는 등 부작용을 빚고 있다. 국민들에게 기업들의 순기능은 인정하고 역기능은 철저히 경계하도록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소비자의 관심이 굉장한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새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대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부동산시장은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 걸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제도가 투기억제에 맞춰져 왔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인구구조가 바뀌고 산업구조도 달라졌기 때문에 그동안의 제도, 법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부동산도 이젠 투기가 아니라 투자로 봐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국회가 빨리 처리해줘야 한다. 그동안 제일 심각했던 것이 시장이 죽어있었던 것이다. 이번 대책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포괄적이고 강도가 높다. 잘했다고 본다. 아쉬운 게 있다면 면적이나 금액 기준으로 양도세 면제 제한을 둔 점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부자한테만 혜택 가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부자한테 혜택 가야 서민한테도 혜택이 내려온다.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 전체 경기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저출산 고령화로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데 이를 타개할 묘안은.

“가임기 여성들의 문화, 인생관이 바뀌고 있다. 결혼은 선택이고 직장은 필수가 됐다. 출생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생애주기별 대책도 필요하고 외국 사례에서 배울 것이 있다. 일본은 다문화정책,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가장 저출산 고령화를 걱정했던 미국이나 프랑스는 인구 구성을 다양화하면서 이민을 조직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도 다문화정책으로 가야 하고 이민국이든 이민청이든 만들어 조직적·체계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문화가정 비자 주는 것부터 시작해 젊고 우수한 해외 인력을 받아들여 우리의 출산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다문화가정은 우리가 가야 할 필연의 길이다.”

-최근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임명을 놓고 말들이 많은데.

“새 정부는 공공기관장을 국정철학 공유한 사람으로 교체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쪽에서 보면 이 말이 맞고 저쪽에서 보면 저 말이 맞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고 공공기관장 임기는 3년이다보니 중간에 겹치는데 단순히 경제논리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기여한 사람들이니까 민주주의를 위한 코스트(비용)일 수도 있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도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직접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주체가 될 수 없다. 주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에겐 국정참여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논공행상을 함에 있어서도 일정한 기준,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살아온 내력이나 전공분야를 맞춰서 그 사람이 갔을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배치해주면 바람직하다. 해당 부처별로 나눠서 장관이 책임지고 인사 기회가 있을 때 그런 사람들을 적절히 융합해서 자리를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정철학을 공유한다고 하면 공공기관장 평가항목에 넣어서 평가결과를 반영해 인사를 하고, 하자가 없다면 가능한 한 임기 3년은 존중해주는 게 옳다.”

-장관 퇴임하면서 서비스산업을 선진화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워했는데.

“새 정부에 주문하고 싶은 게 경제를 구조조정해서 체질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옛날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내수를 일으켜야 한다. 내수를 보완하는 방법 중 제일 중요한 게 서비스산업 선진화다. 제3차, 제4차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가는 분야들을 산업화해야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 의료·교육·관광 등 서비스산업 분야의 규제를 완화해서 기업들이 쌓아놓은 현금을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껍질을 깨고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인지, 주저앉고 말 것인지 기로에 놓여있다. 구조적인 문제, 체질을 개선하지 않고는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부총리 제도가 오랜만에 도입됐으니 대통령은 경제·안보 등 분야별로 컨트롤타워를 둬서 미션과 역할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권한과 책임도 줬으면 한다. 그래서 각 분야별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에너지를 올인해서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묻고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큰 정치력을 발휘하면 이 정부는 성공한 정부가 되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걸 못했다.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수반이 아니라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어떤 경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이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더 큰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컨트롤타워를 맡은 경제부총리는 경제분야는 내가 최종 책임자라는 생각으로 올인해서 노력하고 대통령은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mheel@kmib.co.kr

윤증현 前 장관은 소설가나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자질은 미치지 못하고 공부를 특별히 못한 것도 아니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택하는 공직의 길을 갔다고 말한다. 40년 공직생활이 보람도 있었지만 ‘침과대단’(枕戈待旦·장수가 창을 베고 자면서 아침을 맞는다)의 심정으로 장관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공직이 끔찍하게 힘들었다고 한다. 무대 뒤에서 후배들에게 경험과 지혜를 들려주고 싶어 오랫동안 다닌 헬스클럽이 있는 여의도에 연구소를 차렸다. 요즘은 경기도 양평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블루베리, 가지, 오이 등 소출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69년 서울대 법대 졸업 △71년 제10회 행정고시 합격 △86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 △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9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2004년∼2007년 8월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2009년 2월∼2011년 6월 기획재정부 장관 △현 尹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