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힐 전 차관보의 곤경

입력 2013-04-16 17:29


지난 11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핵 개발과 관련된 ‘북한·이란·시리아 3각 커넥션’을 규명하는 합동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헨리 소콜스키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NPEC) 소장,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하지만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외교위 중동·북아프리카소위원장이 꼭 불러내겠다고 벼르던 증인은 일정이 겹친다며 불참했다. 그는 크리스토퍼 힐 전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 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였다.

레티넌 위원장은 2007∼2008년 북한이 약속했던 핵 시설 불능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을 추궁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레티넌 등 외교위 의원들은 증인 출석 소식이 일찍 언론에 흘러나갈 경우 힐이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까지 예상하며 철저한 준비를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2008년 초까지만 해도 높은 대중적 인기까지 누렸던 ‘스타’ 힐 전 차관보의 곤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화려한 구두 약속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008년 8월 핵 시설에 대한 ‘검증’을 결국 거부하면서부터 그의 급격한 추락은 시작됐다.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정책에서 손을 뗀 그는 주 이라크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관 생활을 접었다.

하지만 최근 한반도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힐에게 다시 차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북한의 영변 핵 원자로 재가동 계획 발표는 2008년 6월 세계에 생중계됐던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장면과 겹치며 힐의 추락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줬다. 힐이 지나치게 북한에 유화적이었다는 이유로 ‘김정힐(김정일+힐)’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일화들이 다시 워싱턴 외교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당시 협상에 관여한 상당수 외교당국자들은 힐이 단기에 큰 업적을 남기겠다는 개인적 야심에 외교협상가로서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핵 협상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은 명백한 ‘정책 실패’라고 주장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대통령으로부터 협상 전권을 받아 불완전할 수도 있지만 당시에 가능한 최대한의 정보를 바탕으로 외교 협상에 나선 외교관을 사후 결과만으로 공과를 따지는 게 온당하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어떤 점에서 힐보다 오바마 행정부 4년간 그의 후임자들이 더 치명적인 대북정책 실책을 저질렀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미명 하에 고수해 온 사실상 북한 방치·방관 정책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11월 북한을 다녀온 세계적인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북한이 플루토늄뿐 아니라 탐지가 거의 불가능한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 중이라고 밝혔음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이 개입을 꺼리며 방치했던 지난 4년간 북한은 핵 기술력을 더욱 증강시켜 이제는 미국 본토 공격을 공언할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허겁지겁 대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가 13일자 사설에서 지적한 대로 존 케리 국무장관은 아직까지 중국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진정한 해법 제시에 실패한 듯하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