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생일 선물

입력 2013-04-16 17:30


개그콘서트의 현대레알사전 코너를 볼 때면 원래 의미와 일상에서 쓰이는 의미 사이에 담긴 해학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대레알사전식으로 “내 친구들에게 생일이란?” 질문을 던진다면 “외제 화장품 받는 날”쯤 될까? 좀 한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선물할 품목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가 된다.

4월이면 시간 맞는 친구들과 생일밥을 먹으며 선물 접수(?)를 받고 있다. 바빠서 자주 못 만나니 생일만이라도 서로 챙겨주며 그 참에 웃고 떠드는 것이다. 이번 생일에도 어김없이 외국산 향수를 선물로 받았다. 점차 국산제품이 선물 품목에 끼어들고 있지만 예전에는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외국 제품을 서로에게 선물했다.

선물할 때는 브랜드와 디자인, 적당한 가격을 감안하게 되는데 외국산 향수와 색조 화장품이 선택하기 딱 좋은 품목이다. 이미 기초 화장품은 국산이 외국산의 판매량을 넘어선 지 오래고 외국인들도 우리나라 기초 화장품을 선호한다. 하지만 기초 화장품은 각자가 사용하는 게 있어 선물 품목에 끼워 넣기 힘들다. 어쩌면 매년 생일 때마다 선물을 주고받는 여성들로 인해 외국산 향수의 인기가 식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일할 때 사용하는 노트북, 녹음기, 카메라, 휴대전화 등도 외국산 일색이었으나 어느 틈엔가 거의 국산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좀 산다 하는 집에 가면 냉장고 세탁기 TV 등 가전제품이 모두 외국산이었으나 요즘은 그런 집을 찾기 힘들다. 그만큼 우리나라 제품이 우수하고, AS 받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외국 제품을 더 들라면 명품백과 주얼리, 시계, 만년필 등이다.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외국 제품의 공통점은 ‘탁월한 디자인’이다. 요즘 강의실에서 외국산 노트북을 열어놓고 수업 듣는 학생들이 많은데 외국 제품을 구입한 이유를 물어봤더니 한결같이 “디자인이 예뻐서”라고 답했다.

품질이 평준화된 제품을 차별화하는 것은 디자인이다. 얼굴까지 튜닝하는 시대이니 들고 다니는 물건 하나까지 모양을 따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글로벌 시대에 진부하게 웬 국산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디자인 때문에 외국 제품이 인기를 누리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모쪼록 디자인까지 탁월해서 생일 때 몽땅 국산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기가 막히게 예쁜 외제 향수병들을 모니터 앞에 놓고 감상하면서 이 글을 쓴다.

이근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