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젠틀맨

입력 2013-04-16 17:25


“비즈니스를 넘어 전문성 갖춘 상품이 된다면 한류는 글로벌 문화 될 수 있다”

문화다원주의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주로 종교적인 사안 때문이다.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권 문화의 충돌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동화되기 쉽지 않은 이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소수 민족이나 약소국가의 문화도 보호되고 번창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로서는 이미 세계 문화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한류의 생산국이란 점에서 다양성 인정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가수 싸이가 부른 젠틀맨의 성공 조짐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더욱 분발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싼티 난다고 외면 받은 그가 당당히 월드스타로 떠오른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국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조차 아직도 우리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한류의 세계화는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가령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2.5%나 차지하는데도 우리는 아직 이들을 편협하거나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국제 이미지 제고와 우리의 세계시민적 미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이 같은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한류의 뿌리를 찾아 직접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은 문화적 충격이 훨씬 심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외국인을 불안에 빠지게 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언어 장벽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음식이 한류를 소개하는 TV에 나오는 것만큼 먹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인은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행동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하소연이다.

물론 한류 드라마를 보고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나라를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곳으로 생각하며 실제 이상의 상상의 나래를 편 그들의 과도한 기대감도 실망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난 끈기와 역동성이라는 우리의 복잡다단한 문화 정체성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이 결여된 외국인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관점에서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겸손과 관대함도 갖췄으면 한다. 파리를 방문한 일본 관광객들이 기대와는 달리 파리 시민들의 불친절과 지저분한 거리에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파리 신드롬’이 적어도 서울에서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싸이의 잇단 성공에도 미국의 특출한 기획사의 도움이 있었으며 글로벌시장을 휩쓸고 있는 삼성의 힘도 다국적 인재의 브레인에서 나온 것이란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삼성전자의 국내 근무 외국인 임직원 수가 지난해 기준으로 이미 1200명을 넘어섰다. 한류의 확산이나 성장을 위해서는 수요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명백한 교훈을 제시한 것이다.

사실 폐쇄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태도는 이미 오래 전에 탄핵을 받았다. 진(秦)나라 승상 이사(李斯)가 유명한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를 통해 명쾌하게 이를 설명한 바 있다. 혼란한 전국시대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외국출신 인사들을 벼슬자리에서 쫓아내자는 의견이 분분했던 때였다. 그는 이런 행태를 적에게 무기를 빌려주며(藉寇兵), 도둑에게 양식을 대주는(齎盜糧) 것이라며 비판했다.

예상을 뛰어넘어 드라마와 음악 중심의 한류가 한때의 유행이나 붐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의 문화’로 도약하려는 과도기에 왔다. 한류가 국가나 특정 집단이 의도하거나 기획한 것이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성과다. 이제 한류는 단순한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설 때가 이미 지났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 사회적 역량이 집중돼 보다 전문화 돼야 한다. 이런 힘이 모아진다면 일본이나 중국을 능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편벽과 고루만 버린다면 우리 혼을 세계인의 가슴에 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