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순직 소방관들
입력 2013-04-16 17:25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기관은 금화도감(禁火都監)이다. 곳곳에서 화재로 백성들이 피해를 입자 조선 세종이 1462년 설치했다. 불이 나면 금화군이 출동해 소화 작업을 벌였다.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소방 전담요원 50명 규모로 멸화군(滅火軍)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최초의 소방서는 1922년 만들어진 경성소방서다. 이를 계기로 전국 주요 도시에 소방서가 생겼다. 경성소방서 소방관들이 펌프반, 수관반, 파괴반, 사다리반으로 편성된 데서 알 수 있듯 펌프차와 파괴용 자동차, 사다리 등이 소방장비로 활용됐다.
체계적인 소방행정이 가능해진 것은 1958년 소방법 제정 이후다. 당시 이 법은 화재는 물론 풍수해와 설해의 예방·방어까지 소방 업무에 포함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풍수해와 설해 관련 업무는 제외됐지만, 1983년 구급 업무가 새로 추가된 데 이어 구조 업무까지 들어갔다. 이때부터 다리가 무너지는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119가 출동했다. 119 이용 시민은 이제 연간 20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방관 처우는 열악하다. 소방대원 한 명이 담당하는 국민은 1200여명으로 미국이나 일본보다 많다. 주당 근무시간은 56시간으로 길다. 평균 수명은 59세가 안 된다. 장비도 마찬가지다. 산소호흡기가 2001년에야 보급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고품질 방수복이나 방화복 구비율은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친다. 그래서일까. 화마와 싸우다 순직하는 소방관이 연평균 6.9명이나 된다.
1995년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 순직 소방관이 들어갔지만 1994년 이전에 순직한 이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숨진 이들을 이렇게 대우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 순직소방관 추모회’라는 민간단체가 매년 추모식을 열고 있는 점 역시 문제다. 2004년 시작된 추모식이 올해는 지난 1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개최됐다. 경비 부족 등으로 이마저 내년부터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씁쓸한 소식이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소방관들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중략) 신의 뜻에 따라 저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떠나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속세에 홀로 남을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어느 소방관의 기도’ 中)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