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선교는 현지 크리스천과 동역해야”
입력 2013-04-16 17:31 수정 2013-04-16 17:39
이슬람서 기독교로 개종해 청년사역
국제기독학생회 하산(가명) 선교사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이슬람권 나라들의 독재자들이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이 지역 크리스천들에게 진정한 ‘아랍의 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몇몇 이슬람 국가에선 복음의 싹이 돋아나고 있으나 여전히 이곳 크리스천 대부분은 박해 속에서 숨죽이며 기도한다.
국제기독학생회(국제IVF) 하산(가명·49) 선교사는 이 같은 현지 상황을 전하면서 한국 교회의 기도와 지원을 요청했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20여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선교운동의 책임자인 그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이었다가 개종해 청년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지난 8∼12일 한국을 방문한 하산 선교사를 서울 서교동 한국IVF 중앙회관에서 만나 이슬람 선교 환경의 변화와 복음화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서서히 이뤄지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이슬람 지역에서도 복음화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하산 선교사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그리스도인은 4000만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이들이 어렵게 지켜온 믿음은 외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산 선교사가 꼽은 대표적인 사례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알제리 기독교인의 ‘영적 성장’이다. 알제리 당국은 2006년 기독교의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배 장소를 제한했고 성경 보급을 막았으나, 크리스천들은 굳건히 믿음을 지켰다. 무슬림이었다가 개종한 한 교회 지도자는 예배를 막기 위해 교회로 들이닥친 경찰에게 “우리 모두를 잡아 가두려면 5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감옥이 필요할 것”이라며 되레 으름장을 놨을 정도로 거세게 저항했다.
결국 알제리 정부는 2011년 6월 개신교를 인정했고 개신교교회협의회의 활동을 허락했다. 외부에서 온 선교사들이야 추방하면 그만이지만 늘어나는 자국민 크리스천을 모두 내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크리스천이 4만여명으로 늘어날 만큼 교세가 확장되자 정부는 종교 제한을 다소 완화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 대한 물리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른 이슬람 국가의 박해 수준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등에서는 개종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하산 선교사는 “크리스천 입장에선 민주화가 이뤄지면 전도를 마음껏 할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독재자가 떠나더라도 종교·사회·문화 환경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독재정권에 대한 반감영향과 독재자 축출 이후 선거 과정에서의 치밀한 준비를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이 정권을 잡은 나라일수록 크리스천의 활동이 난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란을 토대로 한 이슬람법인 샤리아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경향과 관련해선 “절대 다수가 샤리아법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근본주의 정치집단은 점차 신뢰를 잃어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현지 사람을 섬기는 선교
이슬람권 복음화를 위해 하산 선교사는 현지 크리스천과 동역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산 선교사는 “단순히 선교사를 많이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선교사 파송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현지 기독교인·사역자·교회 수와 박해 수준 등을 종합한 복음화율에 따라 국가와 지역별로 사역의 방향이 다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집트, 레바논, 알제리에선 기존의 사역자들을 돕는 데 힘을 쏟고 모로코 튀니지 요르단 등에는 훈련된 선교사들을 더 많이 파송해야 한다”고 했다.
또 선교사들은 현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해야지 자신이 ‘주인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선교사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보완하는 일을 선교단체의 국제본부뿐 아니라 현지 교회가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예컨대 ‘하나님이 알제리로 가라고 말씀하셨다’는 응답에 따라 무작정 그곳으로 떠나서는 안 됩니다. 면밀하게 조사한 뒤 가야 하고 현지에서 그 지역 출신 사역자와 미리 상의하고 동역해야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 출신 기독교인들이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화도 이해하고 있는 만큼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산 선교사는 또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하는 여러 전략 가운데 ‘상황화 모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 모델은 개종자가 생기더라도 기존의 공동체를 떠나지 않도록 하면서 지속적인 선교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이다. 하산 선교사는 “무슬림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며 “다만 무슬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 인정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목숨을 건 탈출
하산 선교사가 청년 사역에 헌신하는 이유는 자신이 20대 유학생 시절 기독학생단체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의 한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하나님을 만났다. 프랑스IVF 모임에 참여했고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환대에 감동을 받으면서 ‘기독교에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성경책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복음의 열망은 식지 않았다. 프랑스IVF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만나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의 뒤를 밟은 형에게 하나님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발각됐다. 하산 선교사는 형에게서 “새로 갖게 된 믿음을 1주일 안에 버리지 않는다면 가족 모두에게 알리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살해하겠다는 협박편지 3통을 받기도 했다. 결국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하산 선교사의 부모는 그에게 “집을 떠나라”고 했다. “1987년 다른 나라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가 파리에서 5년간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제 목숨도 위험했지만 주변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까지 협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산 선교사는 1992년 프랑스IVF 간사로 사역을 시작했고 2002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책임자를 맡았다. 그가 이처럼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가족은 알지 못한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